2005년 여름 여권에서 흘러나온 ‘대연정론’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이 6월 24일 여권 수뇌부와 만나 “국회의 다수파에 총리 지명권과 조각권을 주면 국정이 안정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이 십여 일 뒤 세간에 알려졌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얻었으나 그 뒤 여당의 재보선 참패 등 각종 악재로 수세에 몰린 노 대통령이 야당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카드를 갑자기 꺼낸 것이다. 이는 야권의 반발로 불발됐지만 후임 정부들에서도 국정동력 상실 위기가 오면 연정론이 종종 거론됐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박근혜 대통령도 11월에 노무현 정부 출신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새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가 야권의 반발로 철회한 적이 있다.
연립정부 추진의 근거는 대통령중심제에 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우리 헌법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 86조는 총리의 행정 각부 통할권을 명시했고, 87조는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 해임 건의권을 규정했다. 만약 총리가 헌법에 규정된 권한들을 실질적으로 행사한다면 ‘책임총리’가 된다. 특히 야당 출신 인사가 총리가 돼서 장관 제청·해임과 관련해 의견을 적극 개진할 수 있게 되면 사실상 ‘연립정부’가 가동된다.
최근 여당의 4·10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동력 상실 위기에 처하자 정치권 일각에서 다시 연정론이 거론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총리는 16일 “(윤 대통령이)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주고 그 총리에게 조각권을 나눠주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며 사실상의 연정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헌법상 대통령 고유의 국무위원 임명권을 침해할 수 없으므로 총리는 조각권이 아닌 각료 제청권의 실질적 행사를 통해 행정 각부 통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연립정부 구성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행정 권력을 가진 윤석열 정부와 의회 권력을 지닌 민주당이 경제와 민생을 위해 협치하는 길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