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A 씨는 의대를 준비하는 자녀를 위해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좋은 서울로 거처를 옮기는 방안을 고민했지만 얼마 전 가족회의 끝에 이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최근 의대를 운영하는 지역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높이기로 하면서 해당 전형을 통해서도 자녀가 의대 진학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비수도권 대학이 의대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높이면서 ‘대치동 유학’ 문의가 급감하고 있다. 그간 지방 거주 학부모들이 의대 진학을 원하는 자녀를 위해 학원·강사진 등 교육 인프라가 좋은 서울로 가족이 다같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의대 정원 증원과 맞물려 지역인재 선발 정원도 늘어나 지방 의대 문턱이 낮아지면서 ‘서울 이주’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는 최근 법원이 의료계가 낸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서 내년도 대입부터 의대 정원 증원이 가능해진 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20년 넘게 입시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입시 업체 대표는 “이전에는 지방에서 대치동으로 이사해야 하는지 묻는 학부모들이 정말 많았는데 (지역인재 선발 비율이 높아지자) 이 같은 문의가 확실히 줄었다”며 “가끔 서울 유학을 문의하는 학부모님들이 있지만 서울로 안 와도 된다. 지방이 훨씬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치동에서 입시 컨설팅 회사를 운영 중인 또 다른 한 대표도 “서울은 물가도 비싸고 사교육비도 지방에 비해 많이 든다”며 “(지역인재 선발 규모 확대로) 대치동 유학은 앞으로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치르는 2026학년도 대입 지역인재 선발 비율만 확정된 상태다. 종로학원이 비수도권 의대 26곳이 대학 홈페이지에 공개한 2026학년도 입시 계획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총 신입생 정원 3542명 중 2238명(63.2%)을 지역인재전형으로 뽑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대는 전체 선발 인원 200명 중 160명을, 원광대는 150명 중 120명을 지역인재전형으로 뽑기로 해 지역인재 비율(80%)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부산대(200명 중 151명, 75.5%), 경상국립대(200명 중 147명, 73.5%), 조선대(150명 중 105명, 70%), 동아대(100명 중 70명, 70%) 순으로 높았다.
신입생 1980명 중 1030명(52%)을 지역인재전형으로 뽑았던 2024학년도와 비교하면 비율로는 10% 이상, 선발 인원은 1000명 이상 증가하는 셈이다. 교육부가 올 3월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하면서 “지역인재전형으로 정원의 60% 이상 뽑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혔는데 대학들이 교육부의 지역인재전형 확대 요구에 응한 것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달 24일 대입전형위원회를 열고 의대 증원이 반영된 각 대학의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 계획 변경 사항을 심의한다. 심의 결과는 30일 공개된다. 2025학년도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은 이달 말 대입 모집 요강이 확정돼야 알 수 있지만 이미 공개된 2026학년도 시행 계획과 큰 차이가 없이 대학들이 60% 이상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인재 선발 비율이 높아지면서 N수생의 의대 재도전 가능성도 커졌다. 서울의 한 학원의 경우 의대 진학을 위한 반수생 문의가 지난해보다 30%가량 급증했다. 해당 학원 관계자는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 등 서울시 내 상위권 대학의 공대나 자연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문의가 많아 입시반이 조기 마감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대학마다 수시·정시 선발 비율과 지원 자격이 다를 수 있는 만큼 모집 요강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