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수장을 전격 교체하며 쇄신과 혁신 의지를 보였다. 삼성그룹 내 최고의 ‘기술통’이자 삼성 ‘메모리 신화’의 주역인 전영현 부회장을 반도체 총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에 임명했다. 이례적인 ‘원 포인트’ 인사는 삼성이 직면한 반도체 사업 복합위기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한때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선도자 지위 상실 위기에 처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도 대만 TSMC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등 난국에 빠졌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이 15조 원 가까이 적자를 낸 데는 반도체 불황이 주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차세대 반도체의 주도권을 놓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 반도체 사업은 우리나라 수출과 기술 경쟁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삼성 DS 부문의 위기 타개와 기술 초격차 확보는 국가 경쟁력, 경제안보 등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삼성 반도체 부활’의 특명을 받은 전 부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다만 기업 역량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단거리 국가 대항전식으로 전개되는 반도체 초격차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TSMC를 보유한 대만의 경우 라이칭더 신임 총통이 취임식에서 “대만을 ‘실리콘 섬’에서 ‘AI 섬’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반도체·AI 육성에 국운을 걸고 있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앞세워 미국 엔비디아·AMD의 AI 연구개발(R&D)센터를 유치하는 등 대만 반도체 생태계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등도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반도체 공장 유치와 건설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한국의 첨단 공정 반도체 점유율이 31%에서 8년 뒤 9%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상 한국이 첨단 기술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경고다. 기업은 위기 돌파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업은 대규모 투자와 혁신으로 고급 인재를 육성하고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도 반도체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총력 질주해야 한다. 정부는 세제·금융 등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말고 보조금 지급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도 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기업 투자를 촉진시킬 수 있는 입법을 서둘러 전략산업 육성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