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자원공사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경제 재건을 위한 허브 도시 건립에 나선다. 전쟁 장기화로 식수난을 겪는 지역에 대규모 식수 시설도 공급하기로 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관심을 표명하는 가운데 국내 기관이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윤석대 수자원공사 사장은 12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URC 2024)’에서 율리아 스비리덴코 부총리, 막심 코지츠키 르비우주지사, 드미트로 프리푸텐 의원 등과 연쇄 면담을 통해 재건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이번 일정은 지난해 7월부터 수자원공사와 긴밀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윤 사장을 공식 초청해 성사됐다. 윤 사장은 이번 공식 방문에서 우크라이나 정부 및 관계기관, 주요 지방자치단체와 도시 재건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이는 지난해 9월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끈 ‘원팀 코리아’의 우크라이나 방문 이후 결정된 재건사업 중 가장 가시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수자원공사는 키이우의 위성도시인 부차시(市)를 경제 재건을 위한 허브 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다. 부차는 인구 7만 5000명가량이 거주하는 소도시인데 유럽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키이우 도심 광역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2022년에는 러시아군이 이곳에 침입해 민간인을 대규모 학살하는 등 전쟁의 비극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종식된 후 우크라이나 경제를 재건할 허브 도시 산업단지(테크노가든)를 조성할 것”이라며 “테크노가든은 면적 34.33㎢ 규모이며 건설, 전자, 물류, 항공 정비 업종 등의 산업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폴란드 접경 지역인 르비우주의 호로도크시(市)는 핵심 개발 지역을 ‘스마트 그린시티’로 구축할 계획이다. 호로도크는 1만 6000명이 거주하는 도시로 차량 부품 조립 업체와 산업용 파이프 제조 업체 등 제조업 기반이 우수한 편이다. 폴란드와 가까운 만큼 물자 조달도 원활해 전후 재건에 핵심 물류 기지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자원공사는 이에 호로도크 광역권 내 외국인 투자 도시 개발 지역을 ‘스마트시티’로 구축하기로 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호로도크는 국내 기업의 진출 의향이 큰 서유럽의 관문 도시라 우선순위로 개발을 제안하게 됐다”며 “약 9.3㎢ 규모의 산업단지에 건설업과 물류센터 등을 유치하고 주거단지도 조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쟁으로 고초를 겪는 피란민 등을 위해 대규모 식수 시설도 지원하기로 했다. 폴란드 접경 지역의 소도시 트루스카베츠에는 러시아와의 전쟁 이후 약 1만 5000명의 피란민이 몰려왔다. 애초 2만 6000명가량이던 도시 인구가 4만 1000명까지 급증한 것이다. 그 결과 식수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는데 현지 정수장 시설의 노후화도 상당해 수질 문제까지 발생하게 됐다. 수자원공사는 이에 연말까지 하루 1만 40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식 정수 시설을 지원하기로 했다.
수자원공사의 이번 도시 재건과 식수 지원 사업은 향후 우크라이나에서 국내 기업이 핵심 역할을 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한국이 10년 만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을 맡는 등 국제적 기여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시점에 이뤄져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도 기대된다. 윤 사장은 “이번 재건 협력은 우크라이나 평화 회복과 번영을 위한 출발점이자 대한민국이 물 분야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회”라며 “우리 수자원과 도시 재건 협력이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는 외교 자원의 한 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