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전체 650석 가운데 41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실업난 등으로 삶의 질이 악화한 데 분노한 유권자들이 집권당을 심판하는 것은 최근 글로벌 선거의 공통적인 흐름이다. 노동당의 재집권은 보수당 정권의 무능에 따른 반사이익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노동당이 기록적인 승리를 거둔 데는 중도·보수 유권자층으로 외연을 넓히기 위해 중도 실용 노선으로 과감히 전향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키어 스타머 신임 총리는 2019년 노동당 최악의 참패 후 이듬해 당 대표로 선출된 뒤 집권을 위해 당 쇄신과 재건에 돌입했다. 스타머는 제러미 코빈 전 대표의 강경 좌파 노선을 버리고 당의 정책 방향을 중도 노선으로 ‘우클릭’했다. 이번 총선에서 법인세·소득세 인상, 물·에너지 산업 국유화 등 좌파적 정책을 폐기하고 투자·기업을 강조하면서 친시장 정책을 택했다. 핵잠수함 건조 계획 등 보수적인 안보 정책을 수용해 보수·중도 유권자의 불안도 줄였다.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을 폐기하면서도 이민 급증을 우려하는 국민 여론을 감안해 국경안보부를 신설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반유대주의적 행보를 보이는 코빈 전 대표를 출당 조치한 것도 중도층의 호응을 얻었다.
장기간 야당 신세였던 영국 노동당이 국민 눈높이에 맞춘 실용주의 노선으로 변모한 후 재집권에 성공한 점은 한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재집권을 추구하는 공당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탄핵·입법 폭주와 포퓰리즘 정책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 살리기 정책 대안 제시 없이 국정 발목 잡기에만 매달리면 중도·보수층으로 외연을 확장할 수 없다. 거대 야당은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등 돈 뿌리기 선심 정책을 폐기하고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K칩스법’과 종합부동산세·상속세 완화 법안 처리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또 북한·중국의 눈치 보기를 멈추고 안보 강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이 되려면 헌법 가치 흔들기 폭주를 멈추고 상식의 정치를 복원하는 데서 새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