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에서 내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극우 국민연합(RN)이 반극우 연대의 벽에 부딪혀 3위로 밀려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대신 그 자리는 극우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뭉친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차지했다. 프랑스에서 극우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으나 극우 정당에 의회 권력을 내줄 수는 없다는 유권자의 표심이 반영된 결과다.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 프랑스 좌파 정당들은 지난 달 9일(이하 현지시간) 유럽의회 선거 결과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결정하자 NFP란 동맹 세력을 만들었다. 좌파 진영 간에도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해 세부 노선이나 방향성에서는 차이를 보였지만 극우 정당이 권력의 눈앞까지 온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좌파 연합은 지난달 30일 1차 투표 때까지만 해도 RN에 뒤처진 2위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1차 투표 결과 RN은 33.2%를 득표해 전체 의석수 577석 중 240∼270석을 차지해 1위가 예상됐고, 좌파 연합은 28% 득표에 그쳐 180∼200석으로 2위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은 20% 득표로 60∼90석을 겨우 얻을 걸로 예측됐다.
1차 투표 결과를 받아 든 좌파 연합과 범여권은 비상이 걸렸다. 두 진영은 좌파 연합 내 극좌 정당인 LFI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극우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사실상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르몽드는 NFP에서 총 134명, 범여권에서 82명이 사퇴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를 통해 애초 RN 후보와 3자 대결이 예상된 지역구는 306곳에서 89곳으로 대폭 줄었고 양자 대결이 펼쳐진 지역구는 190곳에서 400곳 넘게 훌쩍 뛰었다. 후보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의 여론조사에선 RN이 2위 진영과의 격차는 다소 줄이지만 여전히 1당을 차지하는 것으로 예측이 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여론조사 예측치보다 더 많은 유권자가 반극우 저지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날 투표율은 여론조사기관 IFOP 추정 결과 67.5%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 총선 2차 투표율인 46.2%보다 21.3 %포인트 높은 것이며, 지난달 30일 1차 투표율인 66.7%보다도 다소 올라갔다.
프랑스에서는 이번 총선 기간 내내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극우에 반대해 투표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축구 국가대표 주장 킬리안 음바페, 유명 팝가수 아야 나카무라,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를 비롯해 프랑스 역사학자 1000명도 언론 호소문을 올리며 RN 반대투표를 촉구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극우 세력의 집권 저지라는 목표 아래 이념을 초월해 정치 세력을 하나로 묶는 '공화당 전선'이 힘을 발휘한 셈이 됐다. 반극우 연대의 힘은 애초 3위로 예상된 범여권을 수렁에서 건져내기도 했다. 범여권은 1차 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만 해도 100석도 못 얻는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NFP의 후보 사퇴로 RN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좌파 지지층의 표를 흡수, 현재 150석∼160석 가량을 얻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