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동십자각] 서툴러도 말해야 바뀐다





“정부도 좋고, 일하고 있는 기업이나 들은 이야기도 좋아요. 하고 싶은 말 없나요.”



지난달 29일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금형자재 제조업체인 ‘굿스틸뱅크’에서 열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간담회. 이 장관은 간담회에 참석한 6명의 외국인 근로자에게 거듭 물었다. 지난 6월 경기 화성에 있는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사고로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18명이 외국인 근로자다. 간담회는 이런 참사가 다신 일어나지 않도록 현장이 바라는 대책을 만드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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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참석한 근로자들은 이 장관의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을 적어왔던 한 근로자까지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간담회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참석자들의 말에도 집중했다. 침묵은 결국 언어문제였던 것 같다. 서툰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할까봐 난처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고용허가제 안전교육을 논의할 때 이 침묵이 깨졌다. 한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 전 안전교육을 받은 적 없다”고 용기를 냈다. 답답했던 간담회도 순간 탁 트였다. 이 장관은 외국인 근로자의 말을 적었다.

외국인 고용 우수기업 간담회에서도 이어진 침묵은 지금껏 산재 대책을 돌아보게 한다. 2008년 최악의 근로자 화재참사였던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 이후 범정부 화재대책은 2008년, 2016년, 2019년, 2020년 4번 발표됐다. 하지만 ‘2020년 대책’에서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모국어 안전교육 확대 대책이 처음 담겼다. 이 사이 내국인 근로자가 떠난 고되고 위험한 일터는 외국인 근로자가 대신했다. 작년 산재 사망 근로자 812명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는 85명이다.

아리셀 사고 재발 방지대책은 이전 대책이 놓친 점을 되짚고 답습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현장을 모두 관리 감독할 수 없다. 이들 스스로 사고 위험을 피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권리의식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한 출발은 언어다. 이 소통 노력은 외국인 근로자와 일하는 내국인 동료도 나눠야 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15개 국가 언어로 사업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 검색이 가능한 서비스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홈페이지에서만 이뤄진다. 이 서비스가 현장에 퍼지도록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니, 베트남어로 ‘동 응이엡(Đồng nghiệp)’은 동료란 뜻이다. 이 말을 알고 있는 베트남 근로자 사업장은 얼마나 될까. 고용허가제로 일하는 3년 동안 한 번이라도 이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간 베트남 근로자도 없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외국인 근로자의 ‘침묵’을 당연하게 여긴 것 아닌지 돌아봐야할 시점이다.


세종=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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