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에 따른 다사(多死)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80대 이상 고령 남성의 자살자 수가 같은 연령대 여성에 비해 5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가부장 문화에 익숙했던 노년 남성이 개인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적 지지’ 결핍에 시달려 이 같은 ‘황혼 자살’ 문제가 불거졌다고 분석했다.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던 지난 10일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공개한 ‘2022년 연령별 남성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을 보면 60대까지는 40명 안팎이지만 70대는 60명이 넘고, 80대를 넘어서면 12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1분기에도 80대 이상 남성 자살률은 25.59명이었으나 같은 연령대 여성 자살률은 5.09명에 그치면서 5배 넘는 차이를 보였다. 2분기에도 80대 이상 남성 자살률은 29.20명, 여성 자살률은 5.75명이었다.
이처럼 고령 남성들의 ‘황혼 자살’ 현상에 대해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정신보건)는 “고령 빈곤, 육체적 질병 등과 더불어 고령층의 ‘사회적 지지’ 결핍이 심각한 것이 원인”이라고 짚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지지(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에 대한 지수는 65세 고령층에서 OECD 국가중 최하위 수준이다. 송인한 교수는 “고령층이 빈곤과 건강 문제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령대를 구분하지 않고 성별로만 보더라도 남성의 자살률(35.3명)이 여성(15.1명)보다 2.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주원인으로 △높은 알코올 관련 정신질환 비율 △저조한 의료기관 이용률 △사망률 높은 자살방법 선택 및 높은 실행률 등을 꼽았다. 우울증 빈도는 여성들이 더 높지만 우울증이 자살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남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남성성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남성의 자살률을 높이는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 전 국민 대상 자살예방 상담 서비스인 ‘마들랜’을 정식 오픈했다. ‘마들랜’은 ‘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의 줄임말로, '마들랜' 앱과 카카오톡 채널 등을 통해 누구나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올해부터 109번으로 통합된 자살예방 상담 전화로도 언제든 상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