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삼성, 이병철의 경계 곱씹을 때[기자의 눈]

허진 산업부 기자





“능력 있는 직원들이 다 떠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회사의 허리 역할을 할 중추 실무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반도체 업계를 취재하던 중 만난 한 삼성전자 직원의 말이다. 그는 누구나 오고 싶어하던 삼성전자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구직 시장에서도 읽힌다. 회사를 떠나려 한다는 삼성전자 직원의 호소에 예전처럼 타이르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삼성전자에서는 개인 역량을 발휘하기 힘들다’ ‘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보고 등 잡무가 우선이다’ 등의 말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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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불만처럼 삼성전자에서는 조직의 존재감이 반짝이는 개개인 역량에 우선한다는 진단이 제기돼왔다. 이는 성장 가도를 달려온 삼성이 ‘인재제일’의 원칙 아래 꾸준히 인력을 채용했고 약 27만 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이 된 것과 맞물려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일이었지만 합리성과 기민함을 저해한 것도 사실이다. 위기감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전영현 부회장이 단행한 일련의 조치에도 묻어난다. 전 부회장은 지난달 사내 게시판을 통해 앞으로는 내놓고 소통하고 직급·직책과 관련 없이 토론하며 문제를 드러내 의사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며 C.O.R.E 원칙을 제시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맞이한 위기는 이병철 창업회장이 커가는 회사를 보며 가장 경계했던 부분일지 모른다. 그는 창업(創業)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며 조직의 경쟁력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했다. 인사고과제·사원연수제를 적용하고 용인자연농원에 대형 연수시설을 만드는 등 새로운 조직제도를 쉼 없이 도입한 것도 결국에는 비대해진 조직 속에서 직원 개개인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게 하고 누구나 오고 싶은 회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요즘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과 오피스 내 곳곳에 C.O.R.E 실천을 위한 포스터가 붙었다고 한다. 크지만 빠르고 기민한 조직을 되찾기 위한 변화의 시작일까. 수출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은 ‘큰 형님’ 삼성전자의 뒷받침 없이는 어렵다. 삼성전자의 수성을 기대해본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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