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100년 기업의 성공 열쇠 가업승계 전략에서 찾아라

유럽 전역에 퍼진 재정 위기 속에서 독일이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일본이 100년 이상 된 기업을 5만 개 이상 보유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성공적인 가업승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수많은 가족 기업에게 필요한 100년 기업의 성공 방정식을 소개한다. 김선화 가족기업 컨설턴트 fbsolutions@naver.com


근혜 당선인은 첫 행선지로 중소기업중앙회를 선택했다. 대선 때부터 경제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던 강한 의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행보였다. 박 당선인의 경제정책 우선순위가 중소기업 정책에 맞춰지면서 그동안 중소기업의 숙원 과제였던 가업승계 상속세 완화 움직임도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상속세 완화는 가업승계를 통해 경영권의 바통을 원활하게 넘겨줄 수 있는 열쇠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최고 50%에 달하는 상속세율은 가업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기업을 후대에게 물려주면서 자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승계 후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거나 상속세 문제로 폐업과 매각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가업승계에 대한 제도적 보완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성장한 한국이 가장 늦은 편에 속한다. 독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업승계 후 7년간 고용을 유지할 경우 상속세를 최고 100% 공제해 주고 있다. 독일에 100년 이상 된 히든챔피언 기업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장수 기업들이 많은 덕분에 독일은 유럽의 재정 위기 속에서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때마침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원회에서 독일의 상속세법 등을 참고해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승계를 앞둔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가업승계는 기업의 지속성장경영을 여는 첫 단추다. 미국의 경영석학 피터 드러커는 “위대한 경영자의 마지막 과제는 승계다”라며 가업승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가족 기업의 영속성은 승계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업승계란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다음 세대의 가족에게 이전하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상속세가 완화된다고 해서 승계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상속세 완화는 성공적인 승계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최근 국내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기업이 창업자 세대를 넘어서 2대까지 생존하는 비율은 3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3대까지는 10~15%, 4대까지는 4%로 줄어든다. 만일 한 기업이 100년 기업을 꿈꾼다면 4대까지 성공적으로 승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낮은 승계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100년을 넘어 심지어 1,000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들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이 다른 것인가. 그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승계를 준비하는 경영자들이 무엇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기업이 아닌 창업자의 철학을 계승하라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기업이 얼마나 될까. 5만 개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000년을 넘긴 기업이 19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왜 장수 기업들이 많은 걸까. 일본의 한 연구발표에선 창업자의 경영철학이나 기업이념을 대를 이어 지켜온 것을 장수 경영의 성공 제1조건으로 꼽고 있다. 유럽에는 200년 이상 된 가족 기업 모임인 제노키앙 Henokiens이라는 친목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장수비결을 “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핵심가치와 기본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모든 장수 기업들의 공통점은 대를 이어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기업이념 가치 등을 지켜온 덕분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 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가치는 기업의 품질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품질에 대한 집념에서 장인정신이 나온다. 그 다음은 인간존중이다. 기업의 구성원인 종업원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종업원들이 행복해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직원들 또한 기업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이 높다. 또 다른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지속적인 혁신이다. 혁신 없이 기업이 100년을 생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혁신에는 성공적으로 변화에 적응해 나가면서도 전통을 지키고 사업의 기본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우리회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경영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기업의 승계를 계획하고 있는 CEO라면 자신의 경영철학과 가치 등을 확고히 하고 이를 명문화하여 후세에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장수 기업들은 가족헌장이나 가족협약과 같은 상호 협의를 통해 명문화한 가족규정을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

장기적인 승계 전략을 준비하라

가업승계를 장기간에 걸쳐 준비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라. 우리나라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승계에 필요한 적정 기간을 3~5년으로 짧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열에 아홉은 승계계획을 너무 늦게 시작한다. 사업초기에는 사업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승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다 기업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고 은퇴시기가 가까워지면 그때서야 승계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그때 자녀들은 이미 회사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중소기업의 승계를 꺼리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한국에도 30년간 흑자경영을 한 중소 제조업체가 자녀들이 승계를 원치 않아 폐업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장수 가족 기업들은 이와 다르다. 이들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회사 이야기를 듣고 자라거나 방학 때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자녀들은 승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기업에 대한 책임감도 높은 편이다.

국내에도 중소기업으로선 가장 먼저 3대째 가업을 승계한 유명한 회사가 있다. 목창호 제조회사인 성남기업이다. 이 기업은 해외 장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장기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승계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3대 후계자 김현준(38) 부사장은 평소 “기업을 승계한 게 아니라 책임을 승계했다”고 말할 정도로 가업에 대한 책임과 자부심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가족연구의 대가인 존 원드 박사는 “승계는 10~20년에 걸쳐서 진행되는 장기간의 프로세스”라고 말한다. 결국 승계 준비는 일찍 시작해서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건강한 가족문화를 추구하라

승계 후 자녀들이 협력해서 기업을 잘 운영해주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계를 전후해 가족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 분쟁이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것도 승계에 있어 가족화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가족분쟁은 가족 기업의 장기생존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그렇다고 경영자가 자녀들에게 서로 잘 지내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장수 기업들은 가족회의를 통해 가족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고 서로 합의하에 가족 규정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스와로브스키 Swarovski는 가족화합을 기반으로 100년 넘게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업은 1895년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업을 시작한 크리스탈 장신구의 세계적인 리더다. 이 가문은 현재 5대째 기업을 이어가며 장수경영을 하고 있다. 비결은 가족의 단합에 숨어 있다. 창업자인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세 아들을 뒀다. 이들에게 자신의 지분을 3등분해 나눠줬다. 형제들은 앞으로 모든 지분을 가족 내에서만 거래하고 후대에 공정하게 배분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그 원칙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현재 회사의 지분은 약 150명의 일가가 나눠 가지고 있다. 5세대들이 분쟁 없이 경영 전반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스와로브스키에는 가족들이 상호 합의한 내용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가문의 절대원칙이 있다. 가족들 가운데 지분율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도 합의 없이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없다. 회장은 가족위원회에서 선정한 8명의 이사회 멤버가 정한다. 가족이라도 경영에 참여하기 위해선 능력을 검증 받아야 하는 시스템도 적용하고 있다. 아무리 지분율이 높은 가족의 구성원이라도 이 회사에 입사하려면 최소 2~3년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가족 중에는 다른 기업에서 10년 이상 전문성을 쌓은 뒤 입사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이처럼 세계적인 장수 기업들은 가족헌장이나 가족협약과 같은 상호 협의를 통해 명문화한 가족규정을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 결국 가족간의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간의 정직하고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란 얘기다.

이러한 원칙들을 준수한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가족, 종업원, 사회가 함께 100년 기업을 키우자는 공동의 꿈을 갖고 노력해야 가능하다. 특히 가업승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인수위원회의 상속세 완화 움직임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작은 정책 변화가 한국에도 독일과 같은 건강한 장수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한국의 히든 챔피언들이 대를 이어 뿌리깊게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김선화 박사는…

가족기업전문가인 김선화 박사는 가족기업승계 주제의 논문으로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가족기업협회에서 가족 기업 컨설턴트 인증을 받기도 했다. 현재 ㈜에프비솔루션즈의 대표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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