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국의 자존심/뉴욕 김인영 특파원(기자의 눈)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으로 주목을 받던 한국이 자존심을 희생하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한국이 IMF의 지원이 필요했는데도 체면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지난 21일 이후 미국의 TV·신문들이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미 언론의 보도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자존심」, 「체면」이라는 단어다. 한국이 자존심을 희생했다는 미국 언론의 평가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면 그 자존심은 무엇이었던가. 외국 딜러들이 한국의 외환보유액을 의심할 때 정부 당국자나 은행관계자 누구하나 국제금융가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다가 IMF 구제금융 신청 후 한국은행총재가 뒤늦게 찾아오는 것이 자존심은 아닐 것이다. 지난 94년 남아프리카는 만델라 정부가 들어선 후 과거 백인정부와 새정부의 재무장관, 상공장관, 중앙은행장이 함께 뉴욕 등 미국 5개 도시를 돌며 투자를 호소한 적이 있다. 언론인도 만나고 대학교수와 학생들도 만났다. 그들은 현재 처해있는 경제현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호소했다. 자존심이나 체면이라는 개념보다는 국가 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월가의 투자자들은 새로 탄생한 만델라의 흑인 정부를 지원했다. 월가에서는 멕시코와 태국 위기에서 정부가 경제 상황을 정확히 제시했더라면 패닉을 피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존심과 체면은 다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체면치레에 급급하다가 국민들의 자존심만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미국 언론이 한국의 자존심을 거론하고 있는 터에 뉴욕 주재 재경관이 보내온 팩스 한장이 한층 기분을 울적하게 했다. 『IMF에 요청한 자금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사용하는 「구제금융」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라고 시작된 팩스는 『아직 그런 자존심이 남아있느냐고 하겠지만…』 하고 사족을 달았다. 미국 언론에 이런 팩스를 보내며 자존심 운운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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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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