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요인 잠복 “낙관은 이르다”/“국가부도 위기는 벗었다” 대세 반영/일부 금융기관 외화부도 가능성 남아한때 달러당 1천9백95원까지 치솟았던 원화의 대미달러환율이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1백억달러 조기지원에 힘입어 1천5백원대로 내려서며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그러나 26일 외환시장은 마냥 낙관론에 파묻혀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신중함이 두드러졌다.
지난 23일 달러당 1천9백64원80전까지 급등했던 시장평균환율은 24일 1백원이상 하락한데 이어 26일엔 1백억달러 조기지원소식으로 1천5백원대까지 급락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평가가 미미하나마 긍정적인 쪽으로 가닥을 잡은데다 연말까지 국가부도는 없을 것이란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현재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연말까지 환율이 1천4백원선에서 안정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1천2백원대까지 폭락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
우선 한국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로버트 루빈 미재무장관이 『한국의 경제는 강력하며 그들이 다시 건강한 성장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태도를 바꿨고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6대은행도 지난 24일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은 한국이 단기외채문제를 해결하고 국제자본시장에 조기 복귀하도록 하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성명을 냈다. 일본의 반응도 좋은 상황.
연말까지 외환보유액에 문제가 없다는 점도 환율안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미 도입된 1백40억달러에 더해 오는 30일 IMF로부터 20억달러가 추가입금되면 연말은 무난히 넘길 전망이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외환시장을 둘러싼 공황심리가 빠른 속도로 수그러들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내년 1월 IMF와 13개 선진국이 제공할 1백억달러와 ADB(아시아개발은행) 10억달러, 시티은행 중심의 신디케이트론 20억∼30억달러 등이 유입되고 2월에 IMF자금 20억달러, 외화표시 국채발행 1백억달러가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1,2월중 만기외채가 최대 2백50억달러 정도임을 감안하면 여유가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은행들이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기 위해선 연말 환율이 1천3백원대로 떨어져야 한다는 점도 환율하락을 예상하는 근거다. 은행들이 인위적인 환율하락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당장 전체적인 외환사정이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환율하락은 이미 외환시장의 희망사항이자 대세로 굳어졌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들이다.
그러나 26일 외환시장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운 이유는 국제사회의 긍정적 반응 뒤에 숨어 있는 불신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부도 위기는 일단 넘겼지만 금융기관별로는 여전히 위기의 편차가 심하다. 외환사정이 극도로 나쁜 일부 금융기관들의 외화부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것.
또 만기도래한 외채의 연장을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외국의 상업금융기관들이란 점에서 26일 전해진 구체적인 반응들은 분명히 불안요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금융계의 투자자들은 1백억달러 조기지원으로 이달중 만기도래하는 단기채무상환에는 무리가 없지만 내년 1,2월중 만기도래하는 외채상환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향후 2∼3개월간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경제정책을 평가한 후 투자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경제통신사인 나이트라이더는 『부실은행 폐쇄, 정리해고제 도입, 외국인투자가의 기업과 은행 인수·합병 허용 등이 가시화돼야 한국에 대한 투자심리가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신용등급을 정크본드수준으로 끌어내렸던 S&P는 26일 『이번 조치로 한국의 금융시장은 안정될 것이나 대외신인도 향상여부는 IMF와 합의사항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는가에 달려 있다』며 가까운 시일내에 신용등급을 재조정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대한투자가 단기간에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다.
최근 이틀간의 환율하락을 희소식으로 즐기기엔 불안요인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또 다시 환율폭등을 맞이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시기다.<손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