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아버지를 닮은 사람들/원종성 동양에레베이터회장(로터리)

우리 근대사의 아픈 과거 속에는 한국 여인과 미군 병사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가 있다.편을 갈라 노는 아이들 틈새에서 「튀기」라는 놀림을 받아가며 제 엄마만큼 일그러진 세상을 견뎌온 그들이 이제는 장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머니의 땅, 한국이라는 나라는 적어도 그들에게 은혜로운 땅이 아니요, 더더욱 이 땅에 태어났으면서 그들은 이 땅을 조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누구를 닮았는지 따지는 민족이다. 사실 아이는 엄마보다 아버지를 많이 닮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0년 전 파리 동역(Gare de 1`Est)에서 밤기차를 기다리다가 만났던 중로의 한국 여인이 떠오른다. 또렷한 서울 말씨를 쓰고 피부가 뽀얀 아주머니의 고향은 인천이라고 했다. 고향을 떠난 지 이십년이 넘었지만 그 사이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눈물까지 글썽여 보였다. 무슨 연유로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이민생활이 힘들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주머니 곁에 놓여 있는 짐들이 꽤 많아 보이는데 동행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아까부터 나를 흘깃거리던 흑인여성 둘이서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을 뿐이었다. 서성대는 나의 눈길을 의식했음인지, 아주머니는 프랑스를 여행하고 딸이 공부하고 있는 독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딸이 엄마를 닮아 예쁠 거라는 생각은 잠시였다. 아주머니가 흑인여성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딸들이에요.』 어느새 아주머니는 딸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부계혈통만을 고집해오던 우리나라의 국적법이 바뀐다고 한다. 오천년을 이어온 단일민족의 혈통을 포기하려 하느냐며 유림은 노여워할 것이지만 그보다 더 회한에 사무친 그들의 마음을 다독거리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른 듯하다. 결국 역사란 천대받는 자의 편에 선다 한들 한걸음 뒤쫓아가는 현실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생각에 머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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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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