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탈법과 위법 경계의 해외자본

대형 외자유치나 인수ㆍ합병, 파생상품 등 첨단 금융거래 뒤에는 통상 자본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외국계 투자은행과 펀드들이 등장한다. 자본시장에서 바라본 이들은 새로운 금융기법으로 세계시장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어나가는 선도 은행으로서 벤치마크의 대상이다. 그러나 기자가 지난 18개월간 검찰의 대형 금융비리 수사를 취재하면서 접한 외국계 금융자본의 모습은 또 다른 일단을 보여준다. 탈법과 위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그것이다. 지난달 31일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기소 처분을 받은 헤르메스(영국계 연금펀드)는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헤르메스 사건은 외국계 펀드에 대한 첫 형사처벌이라는 점 때문에 언론에 대서특필됐지만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번진 행담도 게이트에서부터 농협 파생상품 사건 등 각종 금융비리에 이르기까지 외국계 투자은행의 개입이 있었다. 지난해 행담도 게이트에서는 시티글로벌증권이 한국도로공사의 채무보증 사실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속여 수천억원의 채권을 국내 기관투자가에게 떠넘기다 사기방조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양벌규정에 따라 시티측과 실무자를 동시 처벌할 수 있었지만 시티측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로 실무자만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농협 파생상품 비리 사건은 이자 및 환선물 등 국내 파생상품시장을 독ㆍ과점하고 있는 도이치증권이 브로커와 연결돼 농협의 파생상품 주문을 받는 과정에서 농협 직원에게 뇌물을 주다가 걸린 사건이다. 이들 사건들이 위법의 경계를 넘어선 탓에 형사적 단죄로 이어지는 것들이라면 법망을 피하는 탈법으로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명백한 위법은 아니지만 국내의 허술한 법 조항을 악용해 영업을 하는 것이다. 론스타가 대표적 예다. 조세회피지역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 수법으로 수천억원짜리 국내 빌딩을 팔고도 세금 한푼 안냈다. 앞서 외환은행을 외자유치라는 명분으로 단기 투자펀드인 론스타에 매각한 것도 탈법에 다름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나 업계가 선진 금융시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수업료’라고 말한다. 사건이 터진 후 법 조항을 다듬고 감독 체계를 정비해 공정한 자본시장을 만들어 간다는 얘기다. IMF 이후 수업료는 많이 지불했다. 선진 기법은 배우되 외국 자본의 잘못된 행태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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