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9월 1일]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이유

한정된 자원이 없으면 합리적인 선택도 없다. 자원이 한정돼 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최선의 방법을 고민한다. 이러한 이치는 국민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돼 제반 경제활동이 국민경제의 역량 범위를 초과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자율성을 존중하는 시장경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한껏 보장하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자원이 한정돼 있음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모든 자원을 통제하는 사회주의와 달리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경기변동에 시달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 예산제약 엄격하게 안해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개별 경제활동의 총합이 국민경제의 한정된 자원 역량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가계의 소비활동을 좌우하는 가계소득, 기업의 생산 투자활동을 제약하는 자금, 정부의 정책사업을 제한하는 재정수입 등의 전체 합이 국민경제의 총자원제약을 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들이 자원제약을 초과한다면 실현불가능한 그림자 소득을 믿고 이뤄진 경제활동은 연쇄적으로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재앙을 우려해 시장경제 체제는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예산제약을 엄격하게 직시하도록 파산제도를 도입했다. 가계이건, 기업이건 자신의 예산제약을 초과하는 경제행위를 계속하면 파산할 수 있고 파산한 가계와 기업은 정상적 경제사회활동을 할 수 없어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그런데 가계ㆍ기업과 달리 정부는 파산하지 않는다. 정부가 재정위기에 직면하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두거나 화폐를 더 많이 발행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사실은 정치인과 관료)는 자신이 결정한 방만한 정책사업들로부터 직접 제재를 받지 않는다.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화폐는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을 줄이고 물가급등을 초래해 이래저래 국민들만 어렵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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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과도한 정책사업을 견제하고 국민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유일한 길은 정부와 공공부문의 예산제약을 엄격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제약은 정부지출, 재정적자, 정부부채, 정부순자산, 준재정활동(공기업을 통한 정부의 정책사업) 등에 대해 엄격한 준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재정준칙을 정할 때 비로소 국민들은 후손과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을 삼가 경계할 수 있다.

많은 재정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이유는 정부가 재정준칙으로 예산제약을 엄격하게 하는 일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정부는 전통적인 재정수지 원칙을 사실상 폐기했다. 또한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통한 정책사업에 체계적인 제어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연금제도 등 미래세대로 재정부담을 전가하는 각종 정책들을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국민들에게 이슈로 제기하지 않고 있다. 정치인과 이들에 충성해야 하는 관료들은 거의 모두 경제호황이라는 단기목표에만 매몰돼 있다.

재정 운용 꾸준히 구조조정을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난 10여년간 거의 유사한 재정현안들이 순차적이고도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금융구조조정 공적자금, 국가채무 논쟁, 대형국책사업 사업비 증가, 지방자치단체 재정위기, 연금제도 불안, 건강보험 적자, 주택·토지공사 채무, 지하철·철도·전기·가스 등 적자와 요금인상, 민자사업 재정지원 등 재정 관련 현안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 모습은 그때그때 문제를 돌려 막는 임기응변식 대증요법으로 비쳐진다. 많은 재정 전문가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은 분야별 재정운용이 정부 전체의 재정준칙과 체계적으로 연결돼 각종 재정현안들이 분야별 재정운용 목표 내에서 꾸준히 구조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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