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미금융개혁법안] 중앙은행-재무부 설전

【뉴욕=김인영 특파원】 금융개혁 법안을 놓고 미국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공화당과 민주당, 금융계와 소비단체도 논쟁에 가세하고 있다. 논쟁에 불을 당긴 사람은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다. 그는 11일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 답변하면서 재무부와 견해가 다름을 분명히 했다.논쟁의 초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은행·증권·보험회사 등 금융기관의 벽을 허물되 「지주회사(HOLDING COMPANY)」를 통해 계열화하도록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은행이 「자회사」를 통해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둘째는 제너럴 모터스(GM)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이 금융업에 진출하거나, 금융회사가 기업 분야에 진출하도록 허용할 것인가 여부다. 그린스펀은 2단계론을 펼쳤다. 1단계로 은행·증권·보험의 장벽을 무너뜨리되 지주회사를 통해 계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금융업과 기업의 진입 장벽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로버트 루빈 재무 장관은 은행이 자회사를 설립, 증권 또는 보험업에 진출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금융업과 기업의 영역을 허무는 문제는 경제력 집중을 초래하므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산업 진입장벽 해제에 대해 FRB나 재무부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린스펀은 『글로벌리제이션이 급속히 진행되고, 인터넷 등 통신 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구시대의 장벽을 철폐하지 않으면 미국 금융산업은 세계 지배력을 잃고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루빈 장관도 같은 생각이다. 문제는 진입장벽 해제후 거대한 금융회사를 누가 규제하느냐 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자신의 감독 영역인 지주회사를 통해 규제할 것을 주장하고, 재무부는 산하 기관인 통화감사국을 통해 은행을 감독하고, 동시에 자회사를 감시하자는 것이다. 중앙은행과 재무부의 해묵은 밥그릇 싸움이 재연한 것이다. 그린스펀의 지론은 계열 금융회사가 정부의 재정정책에 좌우될 우려가 있지만 지주회사는 계열사의 과잉 투자를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무부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을 장악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두번째 논쟁은 장기적 과제다. 그린스펀은 『언젠가 금융산업 영역과 기업의 영역이 합치될 것』이라며 『이 경우 손해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루빈은 기업과 금융의 경계가 무너지면 아시아 국가나 대공황 이전의 미국 금융기관들처럼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금융산업 진입장벽을 해제하는 내용의 금융개혁 법안은 지난해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RB는 지난해말 직권으로 시티은행과 트래블러스그룹의 합병을 승인함으로써 은행·증권·채권·보험업을 동시에 하는 시티그룹을 탄생시켰다. 올들어 미국 의회는 또다시 금융개혁법안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의 짐 리치 금융위원장이 추진하는 법안은 금융기관 규제에 대해 그린스펀의 의견을 따르지만, 금융산업과 기업의 진입장벽 해제에 대해선 재무부의 의견을 쫓고 있다. 집권당인 민주당에서는 존 라팔스 의원이 별도의 법안을 제출했다. 라팔스 법안은 금융 감독권을 재무부에 두되 대기업이 금융기관 주식의 15%까지 보유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루빈 장관은 라팔스 법안을 일단 지지했지만, 『상당 부분 고칠 점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금융업과 대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데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린스펀은 이날 『양당이 합의하지 못할 경우 재무부와 합의안을 도출해낼 용의가 있느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 말해 루빈 장관과의 협상을 시사했다. 금융개혁법안을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뉴욕 금융가의 로비스트들은 워싱턴으로 몰려가 의회 복도를 가득 채웠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97~98년 월가 금융회사들은 하원 금융위·하원 상공위·상원 금융위 등 3개 위원회에 1,500만 달러의 로비자금을 뿌렸고, 민주·공화당에 5,8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댔다고 보도했다. 올해 법안이 다시 상정되자, 월가는 유리한 법안이 통과되도록 엄청난 돈을 워싱턴 정가에 뿌릴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 단체들은 『어느 법안이 통과되든 금융산업의 공룡화가 진행되고 경제력 집중현상이 확대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지난해 상원에서 법안 부결을 주도한 필 그램 상원의원은 중소 예금주의 권익이 보호되는 별도의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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