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긴축 모범' 아일랜드 다시 추락… 경제회복 '가시밭길'


‘유럽 최빈국→ OECD 4위 부자’도약 中 부동산 버블 터져 재정악화에 지난 해부터 임금삭감 등 과감한 긴축정책 단행 소비위축ㆍ높은 실업률ㆍ과도한 은행구제 등으로 경기회복 지연 무디스가 이달 19일 아일랜드의 신용 등급을 1년 만에 다시 Aa2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자 유럽의 재정부실 국가들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대표적 재정 부실국가들인 이른바 PIIGS(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아일랜드ㆍ그리스ㆍ스페인)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으로 긴축 정책을 시행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디스는 지난 4월만 해도 아일랜드에 대해 “(재정 위기에 처한) 다른 나라들과 성격이 다르다”며 “올바른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유럽 재정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적극적인 긴축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과 소비 위축, 은행 구제를 위한 과도한 자금 투입 등의 여파로 경제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짧은 번영 후 다시 ‘빈곤의 늪’으로=아일랜드는 지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의 최빈국으로 꼽혔다. 높은 실업률과 세율 때문에 아일랜드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엑소더스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경제학자들과 정치인, 공무원들은 더블린 시민들이 즐겨찾는 ‘도허니앤네스비트(Doheny & Nesbitt)’이라는 펍(Pub)에 모여 아일랜드의 발전 방안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금을 절반으로 깎고, 수입세를 내리고, 외국인 투자자 유치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뉴욕타임스(NY)는 “그들이 펍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내놓았던 아이디어는 곧바로 정부 정책이 됐다.”며 “나중에 ‘도허니앤네스비트 경제학교(Doheny & Nesbitt School of Economics)’라고 불리게 될 만큼 아일랜드 경제 기적의 철학적 씨앗이 그 곳에서 싹을 틔웠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아일랜드는 2000년대 들어 OECD 회원국 중 네번째로 부유한 국가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오랜 가난 끝에 찾아온 행복은 아주 짧았다. 낮은 금리, 은행권의 마구잡이 대출 등의 여파로 엄청난 주택 가격 버블이 부풀어올랐다. 이 과정에서 주택 분야가 국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4%로 늘어났다. 개발업자들은 갑부가 됐고, 미국의 헤지펀드나 사모펀드계의 엘리트들처럼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경제 구조가 가져오는 대규모 세입과 완전 고용에 대한 유혹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일랜드의 은행들은 결국 지난 2008년 여름, 글로벌 경제 위기로 유럽의 금리가 치솟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자산 담보 대출을 중단했다. 하지만 자산 가치는 수직 하락했다. 정부 정책과 은행 대출에 힘입어 급등세를 보였던 집값은 정점을 기준으로 25%나 하락했다. 가파른 경제성장에 힘입어 ‘켈트 호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건만 어느새 고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적자 전환에 재빨리 긴축으로 선회=아일랜드 경제는 지난 해 7.1%의 마이너스 성장을기록했다. 아일랜드 정부 재정은 2007년부터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난 해 GDP 대비 14%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그리스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국가 채무 규모는 GDP의 77%에 달할 전망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지난해 역사상 가장 가혹한 내용의 예산을 편성했다. 공공 부문 임금을 최고 20%까지 삭감했고, 의료ㆍ복지ㆍ교육 등 각종 사회보장 프로그램 관련 예산을 큰 폭으로 줄였다. 세금도 다시 인상했다. 브라이언 코웬 아일랜드 국무총리는 “확실한 건 적자를 줄일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다는 것”이라며 “보다 쉬운 방법이나 유연한 옵션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몽상가일뿐”이라고 단언했다. 패트릭 호노번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아일랜드의 모든 국민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아일랜드의 모든 것이 잘 진행되던 상황에서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과거 극심했던 빈곤을 기억하는 아일랜드의 노동계는 국가의 긴축 정책에 선뜻 동의해줬다. 그들은 그리스 노동계처럼 긴축에 대해 강력히 반발해봤자 경제 회복을 지연시킬 뿐이라고 판단했다. 노동계의 협조 덕분에 정부는 빠른 속도로 위기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긴축과 경제회복 사이의 ‘딜레마’= 임금 삭감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돈을 쓰지 않게 만들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전망도 암울해졌다. 인구가 450만명인 아일랜드의 실업률은 13%를 웃돌고 있다. 1년 이상 장기 실업률은 5.3%로 위기 발생 이전에 비해 두 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NYT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일랜드는 수출을 확대함으로써 경제를 회복시키려고 하지만 수출 만으로는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아일랜드의 실업률은 헤라클라스가 떠맡은 임무에 비교할 만한 수준”이라고 비유했다. 국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는 ‘엑소더스’행렬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아일랜드 재계 관계자들은 “숙련된 기술을 가진 아일랜드의 젊은 인력이 밖으로 나가고 있다”며 고급 인재 유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위기 진화 과정에서 ‘구멍난 독에 물 붓는’식으로 좀비 은행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디스가 지난 19일 아일랜드의 신용 등급을 강등하자 정치권에서는 부실 은행을 국유화했던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이리쉬타임즈에 따르면 신페인당은 “정부가 곪아터진 은행 시스템에 대해 지나치게매달린 결과”라며 “특히 좀비 같은 앵글로아이리쉬은행에 대한 지나친 애착 때문에 정부의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아일랜드당 역시 “정부의 끔찍한 은행 전략 때문에 아일랜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적자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비난했다. 무디스에 따르면 아일랜드 정부는 앵글로아이리쉬은행 구제를 위해 앞으로도 추가로 자금을 지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가의 재정 적자 규모가 단기적으로 확대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정치권의 균열도 커지고 있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아일랜드식 개혁의 어려움을 잘 표현했다. 로고프 교수는 “유럽은 곤경에 빠져 있다. 적자 탈출을 원한다면 아일랜드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지만 아일랜드의 경험은 엄청난 도전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2011년부터 2014년 사이에 연 4%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이는 희망사항으로 지적된다. 무디스는 아일랜드의 성장률이 이 기간동안 2~3%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