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기업 실직자 중기문 두드려도…

◎직급 낮추고 봉급 깎아도 문전박대/이사급 이상은 천덕꾸러기로 전락/노하우 부족… 창업해도 실패 일쑤장기간 경기침체와 잇따른 대기업 부도 여파로 대기업 출신의 고학력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평생직장의 꿈이 무산됐지만 일이 하고 싶기 때문에 이들은 스스럼없이 중소기업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직급의 하향, 보수의 삭감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재취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데 있다. 대기업 출신의 고학력 실업자가 중소기업에 몰리고 있는 현상은 기협중앙회(회장 박상희) 산하 인력정보센터의 구직 현황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 92년 6월 설립된 인력정보센터의 총 구직자 누계(지난 10월말 기준)는 1만9백46명. 이중 올해 인력정보센터를 찾은 사람은 2천4백72명으로 전체의 22.6%에 달하고 있다. 이를 학력별로 보면 대졸 이상이 1천76명으로 전체의 43.5%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전문대졸 이상까지 합하면 고학력 구직자는 전체의 68.7%에 이른다. 갈수록 고학력 구직자의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5월 대졸이상 구직자(누계치)는 39.5%였는데, 6월 39.8%, 7월 40.9%, 8월 41.4%, 9월 42.6%, 10월 43.5%등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 출신의 고학력 직원은 중소기업 재취업시 여러가지 프리미엄이 붙었다. 옮기기 전보다 몇단계 높은 감투를 쓰는 것은 물론 경력만 되면 임원급을 맡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례는「좋은 시절」의 얘기다. 지금은 구직 과잉으로 수평이동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따라 과거 대기업 부장이면 1차협력업체의 임원급으로 가는 것이 상례였지만 요즘은 같은 직급으로의 이동도 어려울뿐더러 더욱 규모가 작은 2차협력업체로의 재취업도 쉽지않은 실정이다. 모완성차업체에서 구매담당부장을 역임한 K씨는 납품관계에 있는 중소부품업체를 재취업 대상으로 물색하고 있지만, 중소부품업체들 역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감원에 나서고 있어 최근에는 등산으로 소일하고 있다. 대기업 출신의 고학력 실업자 중에도 중년층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감원이 많은 대신 상대적으로 재취업은 어려운 샌드위치구조가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원이 지난 7월중 전국 노동관서와 시·군·구 취업담당 부서에 구직신청을 낸 2만8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년 동기에 비해 25∼29세는 78%, 30∼34세는 96% 구직신청이 늘었지만 중년층인 40∼49세는 1백81%나 증가했다. 또한 50∼59세는 무려 1백96% 늘어났다. 물론 중년층의 재취업율은 감원율과 반비례하고 있다. 지난 3월 S기업에서 해고된 C씨(47)는 규모가 작은 동종업체 서너군데를 찾아 다녔지만 나이가 많고 전직장에서의 지위가 높아 월급은 많이 줘야 하는데 업무효율은 떨어진다는 이유로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지난 7월 감원 바람으로 밀려난 L씨는 20여년 이상을 특정분야에 근무하며 이사까지 승진했으나 이사 이상의 임원은 재취업을 꿈꾸기조차 힘든 분위기를 감안, 아예 재취업을 포기한 상태다. 대기업 출신의 고학력 실업자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실업율이 늘면서 창업인구도 늘고 있다. 그러나 창업이라고 해서 온통 장미빛은 아니다. 최근 한국사업정보개발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창업 업종은 외식업이 31.7%로 가장 많았으며, 그다음을 판매업(20.1%)과 서비스업(15.3%)이 잇고 있다. 반면 창업으로 제조업을 선택한 비율은 4.7%에 불과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실업자들이 제조업보다는 외식업, 판매업, 서비스업을 택하고 있는 것은 제조와 관련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실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적정 규모의 자본금 마련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식업, 판매업, 서비스업등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권리금과 관계된 사기 피해를 입는가 하면 기초적인 노하우 부족으로 인건비 건지기초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실에 앞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적인 무력감이다.<정구형 기자>

관련기사



정구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