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우리나라에도 벌처펀드(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가 등장한다.
벌처펀드란 한마디로 부실기업을 싼값에 사서 회생시킨 뒤 이를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중고기업 수리 및 매매업자인 셈이다. 벌처(vulture)는 유럽산 독수리란 의미.
민간 주도의 벌처펀드가 등장함에 따라 현재 정부와 금융기관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 패턴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정책에 따라 짜맞추듯 진행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적정가격에 기업을 사고파는 경제행위 형태로 부실기업 정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 및 재원조달 = 산업자원부는 최근 기업구조조정회사 설립의 법적근거와 세제지원 내용을 「산업구조고도화촉진법」개정안에 포함시켜 국무회의 의결을 이끌어냈다.
법안에 따르면 펀드 설립주체는 개인, 기업, 기관투자가등이며 설립자본금은 최하 100억원 이상으로 제한했다. 설립후 자본금의 10배 범위내에서 채권을 발행해 운용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구조조정전문회사는 지주회사다 = 구조조정전문회사는 특성상 여러개의 부실기업을 인수, 자회사 형태로 거느리게 된다. 사실상 지주회사인 셈이다.
공정위는 국회에 제출한 「지주회사설립 제한 허용방안」에서 부채비율 100% 미만, 자회사지분율 50% 이상인 경우로 허용조건을 제한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전문회사에 대해서는 부실기업 정리를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를 인정, 부채비율 1,000% 미만, 자회사지분율 50% 미만으로 적용조건을 완화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을 허용하되 지주회사의 특성이 잘못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몇가지 조건을 제시했다』며 『구조조정과 관련된 부실기업만 인수할 수 있으며, 되팔 때에도 계열기업군이나 특수관계인에게 매각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고 밝혔다.
◇기업구조조정 파급영향 =우선 부실기업이나 부실징후 기업들이 공개시장에서 과감하게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정부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계열사를 정리해왔지만 앞으로는 적정가격을 제시하는 원매자에게 부실기업 처리를 맡겨 자율적으로 부실계열사를 처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산자부 관계자는 『벌처펀드는 한마디로 이익을 노리는 M&A전문가집단』이라며 『이들이 자기책임하에 기업을 사고 파는 경제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부실기업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부실계열사를 떠안고 있기 보다는 적정가에 매각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며, 구조조정회사는 이를 토대로 향후 미래이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성공하려면 채권은행의 협조가 필수적이다=기업구조조정회사의 회사 매매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대상기업에 대출을 해준 은행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부실기업의 경우 부채 탕감이나 이자지급 유예 등 채권은행측의 도움이 없을 경우 매매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회사들이 기업회생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은행들에게 심어줄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은행측으로서는 일시적으로 부채탕감에 동의한후 정상화이후 채권을 다시 회수할수 있는 길이 열린다.
◇어떤 업체들이 참가하나 = 국내 기업들 가운데는 우선 철강업체들이 벌처펀드 설립에 적극적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자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철강업체들이 공동으로 구조조정전문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업계내 부실기업을 자율적으로 정리하고 회생가능 기업을 선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국계 펀드들도 참여의사를 구체화하고 있다.
M&A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펀드들이 자금을 제공하고 국내 M&A부띠크들이 기업정보를 제공하는 형태의 파트너쉽이 크게 늘고 있다』며 『미국계 카길인베스트먼트와 미국 대형보험사인 에퀴터블 관계회사인 DLJ사등이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이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