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5월7일, 뉴욕 브루클린 동부지방법원. 취재진이 장사진을 쳤다.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고엽제 피해를 입었다며 다우케미컬 등 7개 화학회사를 제소한 '고엽제 소송'의 첫 공판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1976년부터 재판절차가 시작돼 8년을 끌어온데다 무려 1만8,000여명의 참전용사들이 소송을 제기했기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이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재판을 한 시간 앞두고 극적인 화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합의의 골자는 배상과 소 취하. 참전용사들이 소송을 거두는 조건으로 화학회사들은 배상금 1억8,0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양측은 내용을 간략하게 밝혔을 뿐, 공식 설명조차 없었다. 화학회사들이 법적으로는 꺼릴 게 없지만 국가에 공헌한 참전용사들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차원에서 배상금을 내준다는 비공식적인 언급이 뒤따른 정도다. 한국에서는 이 소식을 더욱 더 몰랐다. 수만 명의 파월용사들이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미국의 잘못을 말하고 배상을 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금기였던 탓이다. 고엽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참전용사들의 노력으로 후유증 환자 3만3,062명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치료와 연금 혜택을 받고 있다. 후유의증 환자 8만6,701명도 치료는 가능하다. 2006년에는 피해자들이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 '세계 최초의 고엽제 재판 승소'로 관심을 모은 적도 있지만 소송을 통한 배상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말 연방대법원이 화학회사들의 손을 들어줘 35년에 걸친 소송이 사실상 끝난 상태다. 국내에서도 법적 다툼보다는 보훈 차원에서 해결한다는 분위기 속에 보상폭과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