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

"국가 브랜드는 역사·문화에서 나와… 이젠 소프트파워 키워야"



"사찰·궁궐·서원등 문화자산 풍부
외국인 공감 위해 스토리 담아야
지자체 특성 살린 올레길도 방법 경제계도 투명한 윤리경영 통해
세계로부터 존경 받는 기업돼야
해외진출 공장 현지평판도 중요"
'비교 35개국 중 과학ㆍ기술 부문은 4위, 전통문화ㆍ자연 35위, 국민(시민의식) 30위.'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국가 브랜드' 경쟁력의 현주소이다. 한국전쟁 이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뤄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된 만큼 과학ㆍ기술 등 하드파워 측면에서는 코리아 브랜드의 가치가 높다. 반면 우리의 전통문화와 자연, 그리고 글로벌 시민의식 등 소프트파워 부문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다. 이는 코리아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해법은 전통문화나 자연ㆍ시민의식 등 소프트파워의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배용(63ㆍ사진) 국가브랜드위원장도 12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도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문화ㆍ자연 등의 가치를 재발견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역사학자인 그는 특히 "역사는 '오래된 미래'인데 지속 가능한 미래의 가치가 바로 역사에 있다"면서 "현재 우리 인류가 필요로 하는 생명ㆍ소통ㆍ나눔ㆍ배려ㆍ화합과 같은 정신적인 가치가 우리 역사문화 속에 다 있다"고 강조했다. 역사의 가치를 현재와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소프트파워를 키워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자는 이야기다. 이 위원장은 "국가 브랜드는 특정 국가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를 뜻하는데 국가의 호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보다는 문화ㆍ이미지 같은 소프트파워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역사를 오랜 세월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가의 격이 올랐던 시대에는 어떤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에 주목한다"면서 "해답은 화합, 갈등이 덜하면서 신뢰가 쌓였을 때이더라. 동시에 문화에 주목하고 찬란하게 문화의 꽃을 피웠을 때가 국격도 올랐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국가 브랜드 가치가 높은 곳을 보면 대체로 선진국이 많은데 경제적인 규모와 함께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잘 가꾸고 알려 '품격이 있는 나라' '문화가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브랜드 가치가 높은 프랑스의 경우 그 나라의 제품에 대한 평가도 좋아지는 경향이 짙다"면서 "이 역시 문화적 저력의 영향이지 않겠느냐"고 해석했다. 반면 코리아 브랜드를 달고 있는 제품은 다소 저평가되는 경향도 있다. 최근에야 삼성이나 LGㆍ현대자동차의 제품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국가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아직도 부족한 측면이 많다. 그는 "삼성이나 LG 제품을 일본 제품으로 아는 세계 소비자들도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단 제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도 소프트파워를 축으로 한 국가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소프트파워를 키울 여건은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왔는데 그 속에 가치 있는 브랜드가 많다"면서 "다만 그것들을 알리지 못했고 그것에 의미부여를 못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잘만 가꾸면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를 올리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우선 사찰이나 궁궐ㆍ서원 등을 꼽았다. 이 위원장은 "궁궐ㆍ사찰 등을 보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감동이 있다. 특히 지방에는 하나하나의 사연이 담긴 사찰이 얼마나 많은가. 부석사ㆍ화엄사 등 인간친화적이고 승화돼 있다"고 말했다. 사찰이나 궁궐ㆍ서원 등이 자연의 순리에 맞게 만들어지고 인격을 닦는 장이었다는 것 등을 외국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스토리)를 담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글을 만든 세종 시대의 정신도 좋은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세종의 한글 창제 정신을 한번 보자. 한글에는 평등의 정신이 있다. 지식의 독점을 깨고 일반 평민들에게까지 넓힌 것"이라면서 "외국인들이 볼 문화에 스토리를 담자는 것은 이런 배경ㆍ의미 등을 함께 알리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문화에 스토리를 담아 외국인에게 알리자는 그의 아이디어는 실제 성과로도 이어졌다.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이 위원장은 한국을 방문한 G20 정상들의 영부인을 영접했다. 창덕궁과 경복궁에 정상 영부인들을 초청, 궁에는 담긴 '소통과 화합ㆍ격려' 등의 의미를 녹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위원장은 "이야기가 끝나자 한 정상의 부인이 궁의 상징물을 끌어안고 '너무 좋다'며 감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더 많이 등재시키고 세계에 알려야 한다"면서 "이런 것들이 문화와 역사를 통해 국가 브랜드를 올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의 문화를 형상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 감동을 주는 문화, 매력이 있는 문화로 만들기 위함이다. 서울시에는 문화ㆍ종교의 올레길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수도 서울에는 역사와 종교ㆍ문화가 숨쉬는 공간이 많다. 이를 차별화해 올레길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예컨대 천주교ㆍ개신교ㆍ불교의 올레길을 각각 만들어 걷고 체험하고 느끼면 그것이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이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그래서 2011년은 '품격 있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한 주요 사업에 기업·지방자치단체·해외유관기관과의 연계 시스템 구축 등을 주요 과제로 확정해둔 상태다. 이 위원장은 특히 "서울만 아니라 각 지방과 함께 다양한 지역문화 활성화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면서 "지역에서 문화가 꽃피고 외국인들이 어느 지방에 가든 품격과 문화가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국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G20 회의 이후 서울이 세계의 중심도시로 각인된 것처럼 지방도시도 제2, 제3의 한국의 대표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를 지역문화 활성화를 통해 토대를 닦겠다는 이야기다. 내년 주요 사업에는 국민적 자긍심을 글로벌 시민실천운동으로 확산시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국민(시민의식)의 브랜드 가치가 낮은 것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이 위원장은 "일본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5위권에 들어 있다"면서 "특히 일본인의 경우 친절ㆍ청결 등의 이미지가 세계인들에게 박혀 있는데 우리 국민 역시 드러내지 않을 뿐 그 이상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인정이 많고 친절한데도 마음과 달리 표정이나 자세가 다소 굳어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친절ㆍ질서ㆍ화합 등의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면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 엄청난 대가가 따라온다"면서 "우리 국민의 품격은 다른 나라 국민이 올려주지 않는 만큼 캠페인을 통해서라도 주인의식을 갖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와 함께 ▦국제사회 역할과 책임 강화 ▦소프트파워 강화를 통한 품격 있는 국가로서의 위상 정립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도 포함돼 있다. 국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경제계, 즉 기업의 역할 변화도 주문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은 바로 경제 분야"라며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과 함께 이제는 투명한 윤리경영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돼야 국가의 브랜드 가치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윤추구와 문화ㆍ사회 전반에 걸친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노력이 경제계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해외에 진출할 경우 공장에 근무하는 현지인들은 분명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알고 일하는데 이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는 것도 국격을 높이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제품을 알릴 때 그 제품과 맥이 닿는 우리 전통문화를 연계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스마트폰이 엄청난 경쟁력을 갖고 성장하고 있는데 과거 목판ㆍ금속활자 등도 세계에서 가장 빨랐고 경쟁력을 갖췄었다. 정보기술(IT) 등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것도 이런 창조성과 진정성 등이 문화에 녹여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함께 알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역사 선생님 꿈꾸며 이야기 잘하던 소녀
■이배용 위원장은 "잠재된 정신적 가치 공유 위해 힘 쏟을것"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밝은 색의 옷을 즐겨 입는다. 그러나 그의 어릴 적 꿈은 대학 교수나 총장같이 화려하지 않았다. '역사 선생님'이 그의 꿈일 정도로 소박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께서 꼭 역사 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는데, 그게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역사 연대를 잘 기억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참 잘했던 게 이유였다. 이 위원장은 "혼자 주무시는 할머니가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었던 동화내용을 거의 매일 할머니에게 이야기하고는 했는데, 그런 게 눈처럼 쌓였다"고 회상했다. 자연스럽게 한국 근대사를 전공해 사학자가 됐고 나중에는 대학 총장, 국가의 브랜드를 알리고 높이는 자리까지 맡은 것도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위원장은 "역사는 '오래된 미래'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좀 더 쉽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역사라는 것은 총체적이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교육이 모두 녹아 있다. 또 시작과 결말이 난 것을 다루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본다. 현재 못 보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본다. 물론 앞을 내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가 오래된 미래를 공부하는 것'이라는 그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 그는 "국가의 브랜드를 알리는 것도 역사를 토대로 해 한국 문화의 정수와 가치를 세계에 제대로 소개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만 알고 있을 뿐 세계가 모르는 그런 숨겨 있는 역사와 문화, 그것에 숨결을 불어넣어 알릴 때 국가 브랜드는 더욱 올라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역사를 전공한 것과 국가브랜드위원장 역할을 맡은 것이 딱 맞아 떨어졌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위원장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잠재된 소중한 정신적 가치를 우리 국민, 그리고 세계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약력 ▦1947년 서울 ▦이화여중ㆍ이화여고ㆍ이화여대(한국사 전공) 졸업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평생교육원장, 인문과학대학장, 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브랜드委, 법령으로 명시… 장기적 활동 토대 만들어줘야"
대통령령에 의해 설치 한계
최소한의 예산 확보도 과제
오는 2013년 국가 브랜드 가치를 세계 15위권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세운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지난해 1월22일에 출범했다. 아직 2년이 채 안 된 신생조직이다. '브랜드=경쟁력'인 시대에 다소 늦은 출범이기는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엄청난 무형의 가치를 지닌 '코리아' 브랜드를 알리고 키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직이 갖는 의미는 크다. 하지만 조직체계의 한계점도 갖고 있다. 조직이 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위원회 조직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정치적 시류에 따라 존폐될 수 있는 셈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초대위원장이었던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지난 8월 취임한 이배용 제2대 위원장은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설치근거를 법령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브랜드라는 게 하루아침에 향상되는 성과를 내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사업을 추진해가야 그 성과가 조금씩 쌓여 국가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현재의 조직체계로는 지속성의 문제가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원회에 대한 존폐 논란이 일면 소모적일 수밖에 없고 사업추진의 영속성에서도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되면 전략적 차원에서 국가 브랜드를 키우려는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이보다 훨씬 떨어진 30위권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원인은 ▦국제사회에의 기여 미흡 ▦거주ㆍ관광지로서의 매력 부족 ▦글로벌 시민의식 결여 ▦수출상품의 중저가 이미지 등에 따른 낮은 대외인지도 등에 있다. 개선이 필요하지만 하나같이 하루아침에 뚝딱 바뀔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갖고 국가브랜드위원회가 활동해야 하는 이유라고 이 위원장은 설명했다. 예산문제도 해결돼야 할 부분이다. 브랜드위원회에는 사업예산이 없다.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실무적인 사업추진은 주로 각 부처에서 하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물론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사업 아이템을 잡고 그것을 각 부처에서 실행하는 유기적 관계가 잘 된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꼭 계획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을 수 있고 변수가 발생하는 게 문제다. 이 위원장은 "시급하게 사업을 추진할 경우도 있는데 위원회가 곧바로 사업을 추진하면 효과는 더욱 커지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예산확보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또 "위원회에서는 아이디어만 내고 모든 실행은 부처에서 하라고 하면 사업이 지지부진해질 경우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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