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뇌질환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부는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으로 인한 혼선이 한고비를 넘은 것으로 보고 대북정책과 관련해 신중한 ‘상황관리 모드’로 들어갔다.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가 통치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급격한 대북정책 변화보다는 그동안의 기조를 유지하며 북한의 상황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밤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혼란 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으며 이후 ‘신중 대응 속 치밀한 준비’ 태세로 바뀌었다.
우선 정부의 대북관계 창구를 통일부로 일원화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남북관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의 상황을 잘 관리하면서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뇌수술 등 건강 문제로 인해 대북정책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과 관련한 정보의 접근이 어렵고 북한 권력구조 변화에 대한 정보 역시 실시간으로 얻기 힘들다는 점 등을 감안해 북측의 감정을 건드리는 단발적 대응보다는 그동안 추진했던 대북정책을 유지하면서 남북관계 회복 시기를 타진하는 장기적 전략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당분간 대북정책에서의 급격한 변화는 피하고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국과 보조를 맞춰가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펼칠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 다음달로 예상되는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이나 북핵 2단계 상응조치인 경제ㆍ에너지 지원의 경우 기존 방침대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가 5~6월 제안한 옥수수 5만톤 지원의 경우 북한의 반응 여부를 더 지켜보는 한편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대북 지원은 당초 예정대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사실상 중단 방침을 고수했던 민간 차원의 대북 교류ㆍ협력도 북한의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는 한 조만간 다시 재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실제 이달 말로 예정된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대규모 방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혔다. 이에 따라 9~10월로 예정된 일부 민간단체의 방북신청도 특별한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승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대북정책이 중대한 변화를 시도하거나 총리회담 같이 포괄적인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고위급회담을 북측에 제의하기보다는 남북관계가 현재보다 더 악화되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는 “북한 정권의 특성상 자신들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상황일수록 상대하는 정부의 본성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더욱 면밀히 상대의 신뢰 문제를 관찰할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병세 변화다. 만약 김 위원장의 병세가 악화할 경우 정부의 대북정책은 ‘위기 대응 매뉴얼’을 가동할 수밖에 없고, 결국 경색국면인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로 빠질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