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행정서비스 정신/장영철 국회의원·신한국(로터리)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서비스라는 말은 소위 서비스업에만 국한하여 사용되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민주화되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이제 행정이나 정치분야에서도 서비스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행정서비스나 정치서비스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들릴 만큼 행정서비스의 질이 과연 높아졌는가 하고 자문해본다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답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몇해 전 미국 방문길에 백악관과 미의사당을 둘러보면서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 우편엽서나 사진에서 보던 주요기관 건물의 넓은 잔디밭과 아름다운 숲의 정경이 보이지 않는 것 아닌가!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우리 일행은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사진 속의 아름다운 정경은 건물 전면이 아니라 후면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민원인들이 방문했을 때 도로에서 손쉽게 건물로 들어와 민원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그후 일리노이주 주청사를 방문하였을 때, 올해의 건축상을 받은 만큼 건물의 외형도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과 곧바로 연결되고 지상 3층까지는 쇼핑센터·병원·금융기관 등 주민생활의 필수기관들을 유치하여 행정기관과 주민생활이 밀착되어 있는 현장을 보고 바로 이런 것이 구호로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 스며 있는 서비스 정신의 실천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의 의사당은 어떠한가. 과천 정부 제2종합청사는 도로에서 내려 해당 기관까지 가자면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정말 고역이라고 할 만큼 멀기만 하다. 지방행정관서 또한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들조차도 외형이 권위적 형태를 탈피하지 못하였으며 주로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앞마당은 왜 그리도 멀기만 한지, 도무지 이런 환경에서 행정서비스라는 서비스정신이 차지할 공간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외형이 문제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나, 높은 의자에 앉아 친절하고 상냥하게 손님을 맞을 수 없듯이 문제는 이런 건물, 이런 공간배치를 요구한 「의식의 저변」에 과연 서비스정신이 배어날 만한 여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얼마 전 하버드대학에서 한국 출신 장애인 한사람을 위해 출입문을 고쳤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서비스정신이란 구호로서가 아니라 의식과 생활 속에 무르녹았을 때 완전하게 발현될 수 있으며, 행정이나 정치분야같이 권위적인 관행이 몸에 밴 집단일수록 「환골탈태」의 새로운 각오와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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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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