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비자금 수사 그 이후

폭력배들이 시장 한복판에서 머리가 터지도록 패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튄다. 경찰은 폭력배들과 함께 상인들도 수사한다. 폭력배들이 대낮에 버젓이 싸움을 벌일 정도로 세력이 커진 데는 뒷돈을 대준 상인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고, 뒷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했다는 개연성도 크기 때문이다. 불법 대선자금 및 대통령 측근비리 문제에서 출발해 기업 비자금에 대한 수사로 확대되고 있는 현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지금 기업들은 큰 혼란에 빠져 있다. 회장을 비롯한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검찰에 줄소환되는 판이니 주요 경영현안은 아예 뒷전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비자금 수사가 투명성을 높여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체질을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기업들은 10년 전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지만 1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치권의 전화 한 통에 100억원을 갖다 바치는 세상이다. 서글프지만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기업 가운데 63.3%는 `불이익을 우려해 정치자금을 줬다`고 응답했다. 절반(48.3%) 상당의 기업은 `앞으로도 정치권의 부당한 정치자금 지원 요구에 대해 응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불이익이란 무엇인가. 일단 집권에 성공하면 기업을 손볼 수 있는 수단이 너무 많다. 대표적인 게 세무조사다. 기업들은 국제상사 등 숱하게 많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오늘까지 생존해왔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의 우호적인 관계유지`는 기업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생존법칙이 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알면 해법도 간단하다. 먼저 정부가 지나친 힘을 빼야 한다. 정부의 힘은 각종 규제에서 나온다. 규제를 최소화하면 기업이 우려하는 `불이익`도 크게 줄어든다. 정치권에도 기업 비자금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집단소송제 대상에 대주주나 경영진뿐만 아니라 비자금으로 조성된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도 포함시켜야 한다. 소송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이런 정치인에 대한 낙선운동이라도 허용돼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온 나라가 특검이다, 정치개혁이다, 비자금 수사다 하며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법석을 떨고 있지만 다 `정치쇼`라고 보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이 끝나면 여야는 다시 개편되고 `적과 동지`가 바뀌면 다시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이번 비자금 수사를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문재(경제부 차장) timot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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