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상황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정식 안건으로 채택됐다.
이에 따라 북한 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와 책임자 처벌을 위한 논의가 안보리에서 진행되는 한편, 인권 개선을 위해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안보리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북한 인권 상황을 정식 안건으로 채택할지를 놓고 투표한 결과 찬성 11표, 반대 2표, 기권 2표로 가결했다. 15개 이사국 중 거부권을 지닌 러시아와 중국이 예상대로 반대표를 던졌으며, 나이지리아와 차드는 기권했다. 우리나라와 미국, 프랑스, 영국, 호주, 르완다, 요르단, 칠레, 아르헨티나,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등 11개 이사국은 찬성했다.
이에 따라 북한 인권 상황은 9개 이사국 이상만 찬성하면 안건으로 채택되는 규정에 따라 정식으로 안보리 안건이 됐다. 인권과 관련한 이슈가 안보리 정식 안건으로 채택된 것은 2005년 짐바브웨, 2006년 미얀마에 이어 세 번째이다. 그러나 이전 사례는 안보리가 독자적으로 안건으로 올린 경우이며, 유엔 총회 결의를 반영해 안건으로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이날 회의에 참석해 북한 인권을 안보리에서 다루는 것과 관련한 견해를 밝힐 수 있었으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보리 회의가 끝난 뒤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의 김성 참사관은 “안보리가 안건으로 상정한 것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애초 안보리의 12월 회의 안건에는 북한 인권이 올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18일 유엔총회 3위원회가 북한 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토록 안보리에 권고하는 북한 인권 결의안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시킨 후 이달 5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안보리 10개 이사국이 안보리 의장에게 북한 인권을 안건으로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안보리 의장을 맡은 차드의 마하마트 젠 체리프 대사는 지난 15일 회의에서 이사국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이날 안건 채택 이후 안보리는 유엔 사무국의 이반 시모노비치 인권담당 사무차장으로부터 북한 인권 상황과 관련한 보고를 받은 뒤 이사국 대표들의 발언을 들었다. 미국과 프랑스, 호주 등은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북한 인권 유린을 끝내기 위해 안보리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서맨사 파워 대사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살아 있는 악몽”이라고 표현했으며, 영국의 마크 그랜트 대사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를 “(국제사회를 깨우는) 웨이크업 콜(Wake-up Call)”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조차 반대했던 중국은 안보리가 인권을 다루는 기구가 아닌 만큼 북한 인권 논의에 반대한다면서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6자회담 재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안보리는 북한 인권과 관련해 어떤 조처를 할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안보리 안건으로 한번 채택되면 3년가량 유효한 안건으로 남아 있으며, 이사국들은 필요할 때마다 회의를 열고 논의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오준 대사는 안보리 회의가 끝난 뒤 “북한 인권 상황이 안보리에서 처음 논의됐다는 것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북한 인권이 악화될 경우 언제든지 다시 논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날 외교부 대변인 논평에서 “유엔 안보리가 처음으로 ‘북한상황’을 의제로 채택하고,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이 동북아 지역 및 국제 평화와 안전에도 엄중한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를 확인한 것”이라면서 “향후 안보리에서 금년 (유엔)총회 결의가 권고한 책임 규명 문제를 포함해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북한은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해 북한 주민 모두가 자유와 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