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젠 경제전념” 우려섞인 기대/「현철구속」이후 재계

◎“정경유착·비리온상” 도덕성에 큰 흠집/“김 대통령 입장표명 긴 수렁 탈출계기로”『살얼음판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것 같다. 김현철씨가 구속돼 한보와 「소산(현철씨의 별칭)비리 의혹사건」이 일단락되더라도 그 후유증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S그룹 기조실의 한 관계자는 비리의혹으로 온 나라를 뒤흔든 소산의 구속 이후에도 정국의 향방이 혼미한 양상을 보이면서 재계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반응은 최근 국내 굴지의 D그룹 사장단회의 논의사항에서도 확인된다. 이 그룹은 ▲신규투자의 억제 ▲부동산하락에 대응한 부동산투자 유보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단자사 자금 사용금지 등에 주력하기로 했다. 『소산사태 이후 전개될 경영환경이 그만큼 어둡다는 것을 뜻한다』는 게 이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단 재계는 한보사태와 소산비리 수사가 일단락되고, 누구도 예측못할 폭발력을 갖고 있는 92년 대선자금 해법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이제는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경제살리기에 맞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번주 아들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계기로 남은 임기에 민생과 경제회복에 전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민심수습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대통령의 이런 뜻에 맞춰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가속화 ▲고비용저효율 구조 개선 ▲구조조정 ▲금리인하 등 금융개혁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런 전망이 실현된다면 재계는 한보와 소산스캔들의 긴수렁에서 빠져나와 경쟁력강화와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검찰이 현철씨가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활동비에 대해 특가법상 조세포탈혐의를 적용한 것도 정치자금수수관행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경련관계자는 이와관련, 『이젠 정치인이 받는 대가성없는 「떡값」도 처벌할 수 있게됐다』며 『정치권이 이를 계기로 손벌리기를 자제할 것』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재계의 이런 기대가 실현되기까지는 적잖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보사건과 소산사태는 「정경유착」 「대형사건의 뇌물스캔들」 「도덕성 실추」 등 총체적 비리의 상징적 사건으로 부각됐고 재계는 청문회를 통해 그 「저수지」로 집중포화를 받는 악재가 됐다. 반재벌의 분위기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미 노동계에서는 공공장소에 벽보를 붙이거나 유인물 등을 통해 「재벌해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번 일련의 스캔들에서 비롯된 기업의 책임문제는 올해 임단협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 최근 몇년동안 전경련, 상의 등 경제단체, 그룹별로 추진해온 기업의 도덕성은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됐다. 이와관련, 경영자들은 『「모든 기업이 문제다」라는 극단론은 기업과 경제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될 것』을 강조하지만 당분간 이런 소리가 커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정경유착을 근절해야 한다는 비등한 여론에 따라 경영자의 독점적 경영행태 등을 겨냥, 경영구조 개선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소산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민정부의 이권사업을 놓고 기업간 갈등도 예상된다. 수주경쟁이 치열했던 개인휴대통신(PCS), 민방·유선방송을 비롯 고속도로 휴게소 등의 사업자선정 과정에서 특혜사실이 확인된다면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L그룹의 한 관계자는 『만약 소산이 사업자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실력없는 기업이 사업권을 따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이를 백지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사실여부를 떠나 정치권의 쟁점으로 비화될 것이다. 다음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야당이 이권사업의 비리의혹을 부각시킬 경우 재계는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를 수 밖에 없다. 소산수사로 관심권 밖으로 밀려있던 한보 뒤처리문제도 현안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정부가 현대 등 특정그룹에 이자탕감 등의 「당근」을 제공하고 서둘러 매각을 추진할 경우 곧바로 특혜문제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이번 사태는 결국 대형사업, 공기업민영화, 부도기업 처리 등에서 정부나 금융권, 대기업들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대선자금 공개는 재계 전체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 소산 구속이후 이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청와대도 정면돌파를 선언할 경우 재계는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이어 다시금 「최대피해자」가 되면서 「미니시리즈­검찰청의 재벌총수」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 『사법당국이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할 경우 살아남을 재벌이 하나도 없을 것』(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이라는게 재계의 인식이다. 재계는 이번 일련의 사태로 기업경영과 정경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전경련 등 재계단체가 정치자금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등 「성역깨기」를 본격화하고 있는데서 확인된다. 아울러 재계는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고 대선정국에서 과거와 다른 행보를 유지하고,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박원배·이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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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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