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부도전 1조 흡수”/대기업 발행어음도 할인 애로사채시장에 돈이 말랐다. 최근 서울 명동과 을지로 일대 사채시장에서는 시장금리조차 형성되지 않는 등 자금거래가 거의 끊겨 개점휴업상태다.
이같이 사채시장이 유례없는 경색현상을 보이는 것은 한보그룹측이 부도 직전 한달여 동안 몇몇 은행이 지급한 수백장의 융통어음용지를 사용,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돌고 있다.<관련기사 3면>
16일 사채시장에 따르면 최근 전주들이 어음할인을 기피함에 따라 명동과 을지로 일대 사채시장은 사실상 개점휴업상태에 들어갔다. 이로써 삼성, 현대그룹 계열사 등 초우량업체가 아니면 대기업 계열사도 어음할인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따라 지금까지 큰 손으로 알려진 전주들이 속속 사채시장을 떠나 연락이 거의 두절된 상태이며 일부 대형업자들도 최근 카드대출이나 직장인 소액대출에 참여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같은 양상에 대해 자금시장 일각에서는 한보그룹이 부도 직전 1∼2개월 동안 사채시장에서 1조원 가량의 자금을 조달, 여유자금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모시중은행 임원은 『한보측에 어음용지를 9백장 가량 준 것으로 신고했지만 실제 넘겨진 용지는 2천장에 달한다』며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임원은 『은행들이 한보에 넘겨준 어음의 절반 정도만 은행감독원에 신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어음의 상당부분이 사채시장에서 할인돼 실체를 규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채시장의 한 관계자는 『한보어음을 가지고 있는 사채업자들이 신분노출을 꺼리는데다 당국에 신고해도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한보철강의 제3자 인수가 매듭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시장 관계자들은 이들 융통어음이 4월에 대거 만기가 돌아올 것으로 예상, 자금대란설까지 나돌았으나 대부분 사채시장에서 사실상 사장돼 그 충격이 예상보다 작게 표면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이기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