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건-이인제-정몽준 공통점과 차이점

유력한 차기대권주자인 고 건(高 建) 전 총리가 사실상 독자 세력화의 길을 선택함에 따라 그동안 `제3의 후보'가 대권에 도전했다 실패한 전철을 답습할 것인지, 아니면 `성공신화'를 창조할 것인지 주목된다. 기존 정당의 틀 밖에서 대권을 노렸던 선배 대선 후보들의 도전기가 고 전 총리에게도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선에서 독자세력을 구축해 대권에 도전했던 후보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가장 주목할만한 후보는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이인제(李仁濟) 후보와 2002년 대선 때의 정몽준(鄭夢準) 후보다. 현재 국민중심당 소속인 이인제 의원은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회창(李會昌) 후보에게 패배했으나 경선결과에 불복,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권에 도전했지만, 490여만표를 얻고 낙선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부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 의원은 이후 국민회의에 합류해 두번째 기회를 노렸지만,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중도포기를 선언했다. 이에 비해 무소속인 정몽준 의원은 대선을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국민통합 21'을 창당하고 대권 예비후보로서의 행보에 나섰지만, 여론조사를 통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이루고 중도하차했다. 정 의원은 대선 전날 밤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 논란을 자초했다. 일단 고 전 총리를 포함한 이들 3인의 가장 큰 공통점은 탄탄한 대중적 인기가 독자세력화의 기반이 됐다는 것이다. 이인제 의원의 경우 경기도지사 시절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의 `깜짝 놀랄 젊은 후보'로 언급된 것을 계기로 하루 아침에 전국적 인물로 부상했고, 이회창 후보가 아들의 병역문제로 지지도가 하락하자 탈당을 결행했다. 이 의원은 외환위기 이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에 향수가 고조된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과 외모와 말투가 비슷하다는 점까지 인기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4강신화의 주역으로 급부상한 정 의원은 대선 4개월여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부친 정주영(鄭周永)씨의 뒤를 이어 대망을 꿈꾸게 됐다. 고 전 총리는 지난 2004년 5월 총리직에서 사퇴한 이후부터 안정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대권주자 지지도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탄탄한 개인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 어떤 선거보다도 정당의 영향력이 높은 대선에서 독자세력으로 출마하거나, 출마를 노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개인적 인기 외에도 확실한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충남 논산 출신인 이 의원은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해온 충청지역의 지지와 선거중립을 표망했던 YS의 후광, 영남권 일부의 지원을 믿고 독자세력화를 추진한 측면이 있었다. 고 전 총리도 전북이라는 지역적 기반을 든든한 자산으로 삼고 있다. 다만 울산이 지역구인 정 의원은 부산태생이지만 지역적 색채가 엷기 때문에, 지역적 기반이 독자세력화에 큰 배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고 전 총리가 이 의원, 정 의원과 차이가 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 후보와 정후보가 독자세력화를 모색할 당시 중진 의원이었지만, 고 전 총리는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다. 고 전 총리도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있지만, `행정의 달인'이란 별명이 말해주듯 전남도지사, 교통부장관, 서울시장, 국무총리 등 행정가로서 풍부한 경력을 쌓아왔다. 정치권과의 깊은 관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의미의 정치인으로 볼 수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고 전 총리는 지난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 대권에 도전해 380여만표를 얻었던 고(故)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일맥상통하는 점이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인제 의원이 탈당을 결행할 당시 나이는 49세, 정 의원이 대선출마를 선언했을 때 나이는 51세였다. 만의 하나 도전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제2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젊은 나이였다. 이에 비해 현재 고 전 총리의 나이는 68세로, 사실상 이번 마지막 기회라고 할수 있다. 두 의원과는 달리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들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 중의 하나는 대선을 코 앞에 두고 레이스에 뛰어든 두 의원과는 달리 고 전 총리는 대선을 1년6개월이나 남긴 시점에서 독자세력화를 선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집권당이 사상 유례없는 지방선거 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핵분열의 위기에 직면해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선까지 가야할 길이 먼 만큼 고 전 총리의 길이 더욱 험로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선택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고 전 총리의 독자세력화를 대권도전의 종착점이라기 보다는 범여권의 단일 후보로 옹립되는 것을 목표로 한 `선제공격'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답답할 정도로 신중한 성격의 고 전 총리가 대선을 1년6개월이나 남긴 시점에서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는 `제3후보'로 대권에 도전하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고 독자세력을 띄운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고 전 총리측도 내달 출범시킬 희망연대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세력을 흡수할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개편의 중심에 서서 범여권의 통합을 이끌어 낸 뒤 대선에 나섬으로써 이의원과 정 의원이 겪었던 단기필마식 선거운동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여겨진다. 정 의원도 결국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노무현 후보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여권내부에서 `후보교체론'과 `후보단일화' 주장이 확산되자 범여권의 단일후보 자리를 노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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