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딸들의 인생은 길다

지난해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 우승한 ‘신데렐라’ 프로골퍼 이지영의 아버지 이사원씨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e메일을 보냈다. 예기치 않았던 막내딸의 미국 진출 때문에 하던 일을 잠시 접어야 했던 그는 연습 코스와 코치, 체력 트레이너를 정하고 자동차를 샀노라고 미국에서 정신없이 했던 일들을 말했다. 그리고 딸아이의 훈련 모습을 덧붙였다. 미국 LPGA 투어 첫해를 준비하는 이지영 프로는 새벽5시부터 밤9시가 넘도록 훈련에 매달린다고 했다. 아마 이른 아침 러닝으로 시작한 체력 훈련에 샷 연습, 라운드, 다시 체력 훈련 등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일 것이다.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런 모습은 이지영뿐 아니라 박세리ㆍ김미현ㆍ장정ㆍ박희정ㆍ김주미 등 손꼽아 세기도 힘들어진 미국 LPGA 투어 소속 한국선수들의 공통된 일상일 듯하다. 최근 측근을 통해 들은 바로는 박세리 프로가 현지시간으로 밤9시가 다된 시간에도 체력 훈련을 위해 킥복싱 도장에 들른다고 했다. 그들의 나이가 이제 갓 스물을 넘겼거나 많아야 20대 후반이라는 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팍팍해 보이는 일상이다. 한해 대회가 끝나면 말 그대로 ‘방학’에 들어가 푹 쉬고 보는 소렌스탐이나 타이거 우즈 등 베테랑 선수들의 생활과도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물론 유명 선수들은 이미 뼈를 깎는 듯한 인내와 훈련의 과정을 겪고 정상에 섰을 것이고 우리 선수들에게도 분명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또 자신의 젊음을 바쳐 미래를 완성해가는 한국 여자선수들의 모습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아직도 ‘일등 지상주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살펴볼 일이다. 함께 주니어 생활을 했던 친구들보다 내가 잘해야 하고 꼭 우승을 해서 남들보다 계약금을 더 받아야 한다는 비교의식은 이제 버렸으면 한다. 프로골퍼는 직업이다. 젊은 시절 한번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보다 마흔, 쉰이 되더라도 서양 선수들과 어울려 경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근육뿐 아니라 정신의 피로가 급격히 쌓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다시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이 올 한해가 아니라 자신의 한평생을 고려하며 완급 조절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사원 씨는 “올해는 딸 지영이가 투어에 적응하는 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말이 말로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미국 무대에 이미 데뷔했거나 진출을 준비 중인 다른 선수나 부모 모두 마찬가지다. 딸들의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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