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8월 12일] 여우와 두루미의 소통

여우와 두루미가 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넓은 쟁반 위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 두루미 앞에 내놓았다. 그러나 긴 부리를 가진 두루미는 거의 먹을 수 없었다. 화가 난 두루미는 긴 호리병에 음식을 준비해 여우를 맞이했다. 물론 여우도 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고 둘 사이에는 깊은 앙금과 불신이 자라게 되었다.


유달리 소통이 강조되는 요즈음 떠올려지는 이솝 우화다. 물론 소통의 문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있어왔지만 오늘날 총리 후보자가 '소통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할 만큼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사회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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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환경변화 속에서는 사회구성원 간의 괴리와 갈등이 증폭되기 쉽다. 스펙트럼이 다양해도 에너지를 한곳으로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괴리와 갈등, 분산 에너지를 방치할 경우 개인과 가정은 불행해지고 사회통합은 요원해진다. 기업에서는 조직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소통을 통해 괴리를 메우고 갈등을 치유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한 방향 정렬을 이루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똑같은 사물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 이치다. 이러한 경향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거나 사회의 성숙도가 낮을수록 더 강하다. 심한 경우에는 객관적 사실조차 자신의 주장과 맞지 않으면 부인하려 든다. 그러기에 진실로 소통을 하려면 그 출발점은 '내'가 아닌 '당신'에서 찾아야 한다. 나의 눈이 아닌 상대의 눈으로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역지사지 마음이 아닌 나만의 시각과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일 뿐이다.

최근 인터넷과 첨단 정보기술(IT)의 발달은 소통을 한결 쉽고 빠르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화된 소통수단이 새롭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소통에 있어 수단은 더 이상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그보다는 아직도 내가 먹기 편한 그릇에만 음식을 담아 상대방에게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통의 마음 씀씀이와 소통하는 언어에 대해 되새겨보고 싶은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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