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임종건 칼럼] 중국 물류기행

이달 초 한국로지스틱스(물류)학회가 주최한 ‘한중 물류의 과제와 전망’에 관한 선상 세미나에 다녀왔다. 이 세미나는 인천에서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항으로 운항하는 위동페리와 산둥성 일조항에서 평택항을 운항하는 황해페리에서 왕복으로 두차례 열렸다. 산둥성은 한국과 최단거리에 위치한데다 항만시설이 발달해 한국기업의 중국내 투자의 3분의 1이 이곳에 집중돼 있다. 이 성의 칭다오 시에 한곳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5,000개를 넘고 상주 한국인만도 3만5,00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한중교역의 심도와 함께 우리나라 산업공동화의 실체를 실감케 하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따이공’으로 붐비는 황해 한중간의 교역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570억달러다. 올들어서도 전반기에 벌써 300억달러를 넘었다.이 교역량의 대부분이 황해상의 해운으로 이뤄진다. 웨이하이로 향하는 18시간의 뱃길은 잔잔했고 선내 분위기도 조용했다. 승객 300여명 중 여행객은 50여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따이공’으로 불리는 보따리 상인이었다. 오는 뱃길도 승객구성은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태풍 민들레의 여파로 높아진 황해의 파고만큼이나 ‘따이공’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선내는 마늘ㆍ생강ㆍ고추ㆍ참기름ㆍ검은쌀 등 중국산 농산품을 담은 가방으로 가득했다. 품목당 5kg, 1인당 50kg인 중국 농산물의 휴대품 통관 허용한도를 최대한 채운 물량이다. 보따리 장사가 벌이가 좋았을 때는 배편마다 따이공의 숫자가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지금은 절반 정도로 줄은 셈인데 그만큼 벌이가 시원찮아졌다는 얘기다. 품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40만원어치의 물건을 사오면 15만원 정도의 벌이가 된다는 게 한 따이공의 귀띔이다. 수익률로 치면 괜찮은 편이다. 1주일에 3번 왕복한다 계산하면 월 200만원 벌이는 되는 셈이다. 하지만 물건 흥정하고,통관하고, 20m높이의 승선계단을 지고 오르내리는 수고에다 풍랑으로 멀미라도 하는 고통을 감안하면 많은 것도 아니리라. 페리는 따이공의 집이다. 먹고 자고 빨래까지 배에서 해결한다. 짐을 내리자마자 다시 배에 오른다. 이들이 없으면 페리선사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이들이 중국으로 갈 때 공산품을 갖고 가면 왕복으로 장사를 할 수 있을 텐데 중국세관의 단속이 심해서 거의 가져갈만한 게 없다고 한다. 반면 돌아올 때 중국세관의 휴대품 통관은 수월하나 국내 통관이 까다롭다. 한 상인은 “정부가 중국과 이런 문제를 놓고 싸워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웨이하이항에서 일조항 까지는 버스로 고속도로를 이용해 이동하면서 중국의 물류현장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웨이하이에서 서쪽의 유방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는 2년 전에 개통됐다고 하는데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어쩌다 눈에 띄이는 차량 중에서도 승용차는 구경하기 힘들었고 화물차, 관광버스가 고작이었다. 통행료가 엄청 비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비경제를 무릅쓰고 고속도로를 건설한 뚝심만큼은 대단해보였다. 한국을 앞선 국제화 수준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차량의 번호판이었다. 산둥성의 차량번호판은 ‘魯(노)A 1234’ 식으로 표기돼 있었다. 노는 산둥성이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나라임을 나타내고 알파벳은 도시의 규모순서를 나타낸 것이었다. 한자, 숫자를 두고 아라비아 숫자를 쓴 것도 돋보였다. 전통과 국제화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 번호판에 알파벳을 넣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한글학회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고 한다. 중국의 국제화 수준이 우리보다 앞섰다는 말이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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