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경제 역동성 확보하려면 활발한 기업 혁신이 필수적"

[창간 기획] 해외석학에 듣는다 <5> 에드먼드 펠프스 칼럼비아대 교수<br>


재정투입식 경기부양은 미래 회복력 더 약화시켜 혁신기업 성장 가능토록 금융지원·인센티브 필요
저소득 근로자 고용 기업엔 세감면·보조금 지원 바람직
유럽, 혁신없어 위기 맞아 기업가 정신 등 장려해야


"경제가 역동성(dynamism)을 확보하려면 기업의 활발한 혁신이 필수적입니다."


지난 200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고 남유럽이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것은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 결과"라며 "기업의 혁신을 장려하고 혁신적 기업에 대해 과감한 금융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펠프스 교수는 "이처럼 혁신을 촉진하는 환경을 갖추지 않으면 아무리 천문학적인 재정투자에 나선다고 해도 경기회복은 아주 더딘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펠프스 교수는 "미국 경제의 실업률은 7.5% 이하로 떨어지기 어렵고 저축률은 4% 내외에 이르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지언(Keynesian)식' 처방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며 "고용을 늘리고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저소득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컬럼비아대 연구실에서 펠프스 교수를 만나 세계 경제의 회복 요건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현저히 둔화되고 있는데요.

▦회복 전망이 그렇게 밝아보이지는 않습니다. 회복되는 데 아주 오래 걸릴 것입니다. 9%대인 실업률이 7.5% 밑으로 내려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뉴 노멀'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거대한 힘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업률이 10% 이상으로 다시 올라서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업률 7.5%가 정상적인 '뉴 노멀 시대'에는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게 될까요.

▦저축률이 현재 4%를 조금 상회하는 상황인데 이보다 더 높아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금융위기 이전의 저축률(0%)과 비교하면 대단히 높은 수준입니다. 미국인들은 빚을 줄이려고 할 것입니다. 가계는 이미 어느 정도 빚 부담에서 벗어났고 앞으로도 최대한 빨리 빚을 갚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만약 매년 소득의 4%를 저축한다면 10년이면 소득의 40%가 됩니다. 이 정도면 빚을 확실히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2차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회복기조를 단단히 다질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면에서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재정을 더 투입하는 경기부양책은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방안은 대개 반짝 효과에 그치고 개인소비와 기업투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기회복이 아주 완만하다고 해서 정부가 추가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미래의 회복력을 더 약하게 만들 뿐입니다. 사람들은 더욱 확대된 공공부채를 걱정할 것이고 금리는 결과적으로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바람직한가요

▦미국 경제의 문제는 일자리에 있습니다.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보조금(low wage subsidies) 프로그램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정부가 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독일과 싱가포르가 경기침체기에 이런 방안을 도입했습니다. 이들 국가 모두 실업률이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2009년 2월쯤 이런 정책을 펴야 했는데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보조금 역시 재정투자를 필요로 하는데요.

▦1997년에 제가 제안한 프로그램은 매년 1,000억달러 정도의 재원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 수준으로 본다면 대략 1,600억~1,700억달러 정도지요. 세금이 다소 오르겠지만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14조달러에 비하면 세금 인상폭은 아주 작을 것입니다. 이런 수준이라면 성장을 제약할 정도는 아니지요. 그러나 더 많은 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한다면 기업에도 유리하고 저소득의 경제활동 참여 역시 기업에 이롭습니다. 미국의 음악산업을 예로 들어보죠. 흑인들의 활발한 참여로 미국 음악은 창의력과 혁신 등을 통해 크게 발전했습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 부양책을 펴야 하나요.

▦금리인하 등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은행들은 이미 많은 지불준비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년 전처럼 심각한 지급불능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FRB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인플레이션 타깃(물가상승 억제 목표치)을 조금 상향 조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타깃은 2%였지만 실제로는 1.5% 정도였습니다. 다만 지금 인플레이션 타깃을 올리려 한다면 시장에 겁을 줄 수도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케인지언' 시대가 부활했습니다. 정부 개입의 적정 수준은 어디까지일까요.

▦경기침체기에 정부의 개입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유휴수요가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케인지언식 해법이 반드시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실업률 7.5%를 당연시하는 '뉴 노멀'을 향하고 있습니다. 재정정책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죠. 금융위기를 초래한 집값 버블은 투기적 속성이 강했습니다. 대체방식 또한 케인지언식이 아니어야 합니다. 지금은 미국 경제의 활력을 부활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경제 활력을 부활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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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너무 단기실적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다음 분기 실적 목표치를 맞추려고 5년 뒤 회사의 번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할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투자들은 CEO들에게 분기 실적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기업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CEO들이 모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기본적인 것까지 전부 큰 변화를 줘야 합니다. 또 실리콘밸리는 지난 10년간 아주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업들에 대출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동네 구멍가게를 위한 보조금을 지급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기업을 발굴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금융지원 시스템과 혁신기업 인센티브 정책이 더 필요합니다. 또 외국인이 혁신기업에 쉽게 취업할 수 있도록 이민정책도 수정해야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산층이 줄어들었습니다. 성장도 늘리면서 분배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미국 경제가 다시 혁신을 이뤄낸다면 취업률도 높아질 것이고 빈민층도 큰 득을 볼 것입니다. 미국은 현재 혁신이 줄어든 데 따른 부정적 영향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지난 8~10년간 기업의 투자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저소득 근로자들이 이런 현상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다시 경제를 번창시킬 수 있느냐입니다. 경제가 번창한다면 저소득층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습니다. 반면 경제가 침체되면 빈곤층은 더 힘들어집니다. 미국 정부는 과거 주택소유를 장려하고 주택건설산업을 부흥시키려 노력했지만 이런 방법은 별로 지속적이지 못했습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성장보다 복지에 치중한 결과가 아닌가요.

▦유럽 경제는 혁신이 없어 큰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유럽의 경제문화(economic culture) 자체가 창의력이나 모험을 격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매년 유럽의 성장세는 미미했습니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에 희망이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 비관적인 표현입니다.

-유럽 경제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재정위기는 유로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동유럽 역시 경제침체에 시달리고 있고 영국 역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집니다. 영국은 금융과 보험산업에 치중해왔는데 이런 산업은 고용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유럽의 경제문화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실험정신(experimentation), 모험심(exploration) 등을 장려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바꿀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서는 불분명합니다. 정부 기관이나 기업들이 이런 것들을 장려하지도 않습니다. 기업은 단순히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캐쉬카우(cash cow)'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유럽 재정위기는 어떻게 될까요.

▦나는 '왜 그리스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아르헨티나보다 클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아르헨티나 경제 규모가 그리스보다 더 큽니다. 부채도 더 크고요. 유럽 국가들은 그리스 경제를 구해내는 게 그들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보다 그리스에 돈을 빌려줬던 사람들을 돕는 것이죠. 이런 구제금융(bailout)은 금융시장에 많은 긴장을 가져왔습니다. 다음에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구제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우려가 커진 것이죠.

내 생각에는 유럽 국가가 개입하지 않았던 게 더 나았을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유럽 국가를 배제한 채 그리스 정부 및 채권단과 함께 해법을 제시하는 방안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어차피 이런 해법을 모색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는 아마 부채를 다 갚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 미국도 국가부채와 재정적자가 심각한데요.

▦앞으로 3, 4년 내에 미국은 정말 많은 재정적자를 안게 될 것입니다. 경제회복이 내가 예상하는 것만큼 더디다면 4, 5년 후에도 재정적자는 여전히 엄청난 규모에 달할 것입니다. 미국 국채를 보유한 국제 투자자들은 미국 정부의 이자지급 능력에 의문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아마 달러 가치를 심각하게 떨어뜨릴 것이고 금리를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 충격으로 경제회복도 멈출 수 있고요. 만약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는 미국 경제를 항상 따라다닐 것입니다.

-중국이 앞으로 미국 국채를 계속 살까요.

▦만약 달러 위기가 발생한다면 중국은 국채투자를 그만두겠죠. 이런 상황은 매우 심각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나 이건 너무 비관적인 관측입니다.

-한국은 지난달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세계 경제 성장이 미약한데 적절한 조치로 보시는지요.

▦만약 금리를 0.5%포인트 내려야 했는데 0.25%포인트 올렸다면 모를까, 시점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침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지금은 회복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는 한국이 그렇게 빨리 금리를 올렸다는 게 놀랍기는 합니다만 한국 경제 상황을 많이 알지 못해 적절한 코멘트를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필립스 곡선' 한계 극복… 2006년 노벨상 받아
●에드먼드 펠프스는


물가와 실업률의 반비례 관계를 설명하는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의 오류를 수정한 공로로 지난 200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물가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좌우된다는 '기대조정(expectation adjusted)' 필립스 곡선을 제시함으로써 1970년대 오일쇼크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고물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필립스 곡선의 한계를 극복했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이론'에 많은 영향을 준 시장친화적 분배론자로 알려져 있다.

▦1933년 일리노이주 에번스턴 ▦1959년 예일대 경제학박사 ▦1990~1993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경제자문 ▦1982년~현재 컬럼비아대 정치경제학 교수 ▦200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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