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대 계열 중 워크아웃(기업 개선작업)이 확정된 기업의 창업주 등 경영진이 채권단에 의해 강제 퇴진당하는 첫사례가 나왔다.제일은행은 9일 워크아웃 방안이 확정된 동국무역의 창업주와 1세대 경영진에 대해 경영부실의 책임을 물어 전원을 강제 퇴진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동국무역의 현 회장이자 창업주인 백욱기(白煜基·75)씨를 비롯한 1세대 경영진은 오는 3월 주주총회를 계기로 전면 퇴진한다.
채권단은 또 기업이 부실해진 데는 오너 친인척이 거느린 하청업체의 책임도 크다고 보고 친인척 명의의 하청업체를 완전 정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채권단은 동국무역에 대한 워크아웃 플랜을 가동시키는 대신 13개 계열사를 청산 및 지분 매각·합병 등을 통해 1개사로 완전 통합키로 하는 등 자회사 등에 대한 강제 구조조정 작업도 병행키로 했다.
워크아웃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의 경영진을 강제로 퇴진시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워크아웃 기업 중에서 동아건설의 오너인 최원석(崔元碩) 회장이 퇴진한 예가 있었으나 이는 자발적인 형식이었으며 워크아웃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경영을 정상화시킨다는 명분 아래 경영권을 유지해왔다.
그동안 금융계와 재계에서는 워크아웃 제도가 오너의 희생없이 채권단의 지원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특혜시비」가 제기돼왔다.
이에 따라 동국무역의 이번 사례는 앞으로 다른 워크아웃 기업의 정상화 계획 및 경영진 처리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룹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이 오너 친인척과 그들 소유의 하청기업에까지 메스를 댄 것은 국내 기업사상 초유의 일로 기업이 부실해지면 오너는 물론 친인척과 하청업체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선례를 남기게 됐다.
채권단은 이같은 경영진 개편방침에 따라 오는 3월 중 열리는 동국무역의 정기 주주총회 때 외부 전문경영진으로 이사회를 새롭게 구성, 정상화 작업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2세 경영진 중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백문현(白文鉉·53·白회장 장남) 동국방직 대표가 참여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룹이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체제로 완전 개편되기 때문에 白대표가 경영권을 갖게 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이같은 정리방침을 집행하기 위해 동국무역 경영진의 주식양도담보 계약서·주식처분 위임장·주식 포기각서·구상권 포기각서·인감증명서·경영권 포기각서·경영진 사임원 등 관련 서류 일체를 받아놓은 상태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현 1세대 경영진이 퇴진에 반발했으나 부실기업의 경영진에 대한 문책 차원에서 창업주를 포함한 경영진들을 강제 퇴진시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동국무역이 부실화된 데는 하청업체의 경영진인 오너 친인척들이 그룹과 특수관계라는 이유만으로 품질과 생산성 등에서 형편없는 물건들을 납품해온 게 요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친인척 명의의 하청업체들은 컨설팅업체의 자문을 받아 완전 정리할 방침』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채권단은 지난 5일 전체회의에서 워크아웃 대상 3개사에 대해 1,400억원을 출자전환, 1,550억원을 신규자금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정상화 방안을 확정했다. 【김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