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2003년이 남기는 유산

SK글로벌에서 출발해 웬만한 대기업은 모두 연루가 된 정치비자금 파문. 강남 재건축아파트 값 폭등으로 대표되는 부의 불균형과 교육 불균형의 심화. 부안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을 둘러싸고 절정을 이룬 한국 사회의 내부갈등. 여기에다 참여정부 출범과 더불어 분배우선이냐, 성장우선이냐라는 화두를 놓고 지금껏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정재계간 힘겨루기 등등. 2003년을 되돌아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룹들을 단 한 곳 예외없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시킨 정치비자금 파문의 비밀은 누가 뭐래도 이권이다. 대부분의 정치자금이 보험용이라지만 수혜를 기대하는 것이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 모두 기준점이나 시각의 문제일 뿐 결국 정치권과 재계가 각종 인허가권을 둘러싸고 얼마나 숱하게 `테이블 아래에서의 거래`를 펼쳐왔었는지 방증한다. 검찰의 정치비자금수사 등으로 체면은 구겼다 해도 이권이 있는 한 기업들은 또 다시 내년 4월 총선 때 정치자금을 제공할 것이다. 설사 내년 총선이 아니라면 그 다음 선거 때라도 정치권과의 거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현상에서 출발해 결국 한국 교육의 파행적 현실까지 건드려야 했던 강남 집값 폭등의 교훈은 어찌보면 `재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감춰진 진실을 겉으로 드러내준 반면교사다. 강남 땅값은 일단 진정시켰지만 정부의지와 무관하게 재산축적의 `건전한 기회`가 사실상 박탈된 상황에서 제2, 제3의 강남을 꿈꾸는 부동산신화는 앞으로도 끈질기게 이어질 것이다. `부안주민들의 핵폐기물처리장 반대사태`의 감춰진 핵심은 지역주민의 피해의식이자 자기방어본능이다. 올해뿐 아니라 그동안 수십년에 걸쳐 개인이나 주민들의 존재는 정치권력에 의해 얼마나 쉽사리 무시당했었나. 해당부처 장관의 사임을 고비로 부안문제는 점차 봉합되는 모습이지만 이번 사태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부안은 너무 쉽게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마냥 비관할 필요는 없다. 되살펴보면 이 모든 문제들은 자본주의에 편입한 한국의 강제 숙성된 후유증이자 생채기다. 정치비자금 제공, 집값 폭등, 집단이기주의 등은 모두 2003년의 유산으로만 남기를 기원한다. <김형기<산업부 차장> 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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