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국 기업은 어떤가. 대체로 밑천이, 자기자본이 달랑달랑한 상태에서 사업을 착수한다. 게다가 적정자본보다 과분한 규모의 사업을 밀어 붙인다. 그리고 이내 배보다 배꼽이 큰, 즉 자기자본보다 몇 배 되는 빚을 내어 사업을 영위한다. 그러니 온갖 무리수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사업 수완처럼 미화되는 풍토였다. 그러다가 공장등 담보물인 부동산의 값이 제때 상승해 주지 않아 자금흐름이 원활치 못할 때 조금만 삐끗하면 쓰러지기 일쑤였다.소액의 받을 어음 한 두개가 부도나면 영락없는 연쇄부도였다. 그리고 남의 탓으로 열 올리며 침을 튀긴들 어찌하겠는가.
한국의 기업은 그 만큼 유동성 면에서 지구력이 허약한 실정이었다. 대마불사, 성장의 신화인 대기업들이 무참하게 연이어 쓰러지는 오늘의 현실이다.
요즈음 IMF를 맞아 부채비율 200% 미만을 유지하려고 호들갑을 떠는 게 격세지감이다. 부채비율 낮추는 데도 온갖 기교가 난무한다. 사업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가 보다. 비지니스는 결코 쇼가 아니다.
자금 면에서 보면 91년에 시작한 FILA코리아의 의류 내수사업은 사업 착수부터 달랐다. 의류 내수사업이 대단한 성공이라고들 평가하지만 그것은 바로 풍족한 밑천이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풍부한 밑천 마련을 위해 우선적으로 노력했다. 풍부한 자기자금이 없이 소신 경영, 즉 그때그때 신속하고도 최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경험에서 나온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본사의 회장과 월급쟁이 사장인 필자는 의류사업에 따른 자금 마련을 위해 시쳇말로 빅딜(BIG DEAL)을 했다. 당연히 의류사업에 대한 사업계획의 타당성은 물론, 성공의 가능성과 전략 등을 브리핑했다.
초기 자본 6억원으로 출범키로 했다. 당시 한국 실정으로는 적은 자기자본은 아닐지 모른다. 많은 경우 그 정도 금액으로 아니 더 적은 액수로도 사업을 시작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빚을 내어 할 수도 있지만 빚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기 때문에 대세 판단을 그르치기 쉽다.
당시 필자는 FILA의 신발수출 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했다. 필자는 그에 따른 수출수수료를 받았다. FILA 신발수출에 따른 성공수수료(SUCCESS FEE)를 담보로 이탈리아 본사와 빅딜을 한 것이다. 그 해 적어도 2억5,000만 달러어치의 수출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3%의 성공수수료는 적어도 750만 달러가 된다.
어차피 주고받을 수수료이므로 선불을 요청했다. 본사의 회장도 쾌히 승락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호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 날려도 좋은 자금 750만달러! 이것이 힘이 되었다. 따라서 사업초기에 몇 년간 은행에 80억원 이상 현금을 예치해 둔 덕에 이자를 포함하여 연 16억원에서 26억원까지 순이익이 났다. 풍부한 자금 마련 외에는 일일이 이탈리아에 가서 승인 받는 일없이 완전한 독립된 경영을 했다.
그것 역시 성공의 한 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유자 주주는 결실을, 경영은 경영자의 몫이다. 결국 사업은 성공하여 많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선뜻 750만 달러라는 거금을 선금으로 내준 것은 신뢰의 한 징표다. 그 신뢰는 풍족한 밑천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초기부터 150만 달러라는 거액의 연봉이란 보상이 필자로 하여금 한 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게 했다. 어쩌면 이러한 FILA코리아의 내수사업은 성공을 처음부터 보장받은 것과 같았는지 모른다. /FILA코리아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