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글로벌 비즈니스] 123년간 통신장비 생산.. 에릭슨

스웨덴 에릭슨은 우리 기업에게 「한우물 파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123년동안 오로지 통신장비를 만드는 데만 주력해왔다. 그 결과 에릭슨은 지난해 212억달러(한화 약 26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통신장비 분야 세계최고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스웨덴에서는 에릭슨이 이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에릭슨이 스톡홀름에 있는 본사를 영국으로 옮기는 계획을 추진하자 전국에서 연일 시위가 벌어졌다. 어쩐 일이지 스웨덴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었다. 에릭슨의 이같은 계획은 말그대로 계획에 그치고 말았다. 에릭슨은 차선책으로 본사는 스톡홀름에 두되 세계시장을 4개 권역으로 나누었다. 사실 에릭슨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통신기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영국으로 본사를 옮겨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본사를 영국으로 옮길 경우 스웨덴경제가 흔들린다. 스웨덴 국민들이 연일 가두시위를 벌이는데도, 정부가 팔짱을 끼고 있었던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세금수입이 줄어들고 일자리를 잃게 되는 스웨덴으로서는 에릭슨의 본사이전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만한게 에릭슨은 매출액으로 스웨덴에서 1~2위를 다투는 대형 기업이다. 에릭슨의 지난해 판매액은 212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정부예산의 3분의 1에 가까운 무려 26조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LG정보통신의 한해 매출이 2조원이니 이보다 무려 13배나 큰 회사다. 에릭슨의 세금을 공제하기전 수익은 21억 달러, 매출액의 10%가 이익인 셈이다. 경상매출이익률이 10%라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들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기업을 스웨덴이 영국으로 가도록 가만 놓아둘리가 없는 것이다. 이 회사가 고용한 직원만 해도 무려 10만여명이니 국민들이 당할 고충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에릭슨은 현재 전화를 쓰고 있는 세계 130개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휴대폰을 쓰고 있는 2억700만명 가운데 40%인 7,500만명 정도가 에릭슨이 만든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고 이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은 단연 1위다. 이 모두 123년동안 오직 한 우물만 판 집요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에릭슨은 특히 이 분야에서 세계최고기업이 되기 위해 기술개발에 엄청나게 투자했다. 지금도 매년 33억달러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LG정보통신의 2년 매출을 몽땅 기술개발에 사용하는 셈이다. 그 결과 지난 한해 동안 1,200개의 세계 특허를 획득했다. 특히 지난해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의 원천 소유자로 알려진 미국 퀄컴사와 벌인 특허분쟁에서 잇따라 승리한 사례는 이 회사의 기술력 수준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에릭슨은 세계 최고 통신 전문업체 답게 앞으로도 차세대이동통신인「IMT-2000」 등 최첨단 기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계획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현재 IMT-2000 관련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일본의 NTT와 J텔레콤, 독일의 만넨스만과 IT모빌, 미국 AT&T와이어리스, 그리고 이탈리아 등 현재 시행중인 IMT-2000 시범서비스의 장비가 대부분 에릭슨이 만든 것이다. 에릭슨은 또 최근 통신기술이 음성과 데이터(문자나 그림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통합하는 쪽으로 발전함에 따라 미국 데이터 통신장비 전문업체인 뉴브리지의 자회사 ACC를 전격 인수하며 이에 대비하고 있다. 에릭슨은 지난 123년동안 오로지 한 우물만 판 결과 지금은 과거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1년내내 해가 지지 않는」 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최고·최강의 통신기술을 자타가 공인하는 에릭슨의 스톡홀름 본사. 마치 대학 연구동을 연상할 정도로 에릭슨은 연구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에릭슨과 한국의 인연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에릭슨과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사람은 고종황제다. 때는 1896년. 당시 궁내부에 우리나라 최초로 교환기와 전화기가 설치됐고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이 고종황제다. 그리고 이 제품을 공급한 업체가 바로 에릭슨이다. 당시 에릭슨은 조선과 국교를 맺지 않아서 이 제품은 러시아 통신업체를 통해 소개된 뒤 궁내부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릭슨은 또 80년대 초반 손잡이를 돌린 뒤 교환원을 통해 상대방과 연결해야했던 수동전화를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눌러 곧바로 상대방과 통화할 수 있는 자동전화(일명 DDD)로 바꾸는 전자교환기사업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당시 중소도시와 농어촌에 공급된 전자교환기가 대부분 에릭슨 제품이다. 그 뒤에도 에릭슨은 한국통신, 온세통신, 인테크텔레콤, 아남텔레콤 등 통신사업자는 물론 삼성SDS, 대우 등 일반업체에도 다수의 통신장비를 공급했다. 특히 한화정보통신, 삼성전자, 국제전자, 쟈네트시스템, LG정밀 등 여러 국내 장비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한진전원주식회사 등 다수의 기관에 첨단 통신기술을 이전하기도 했다. 얼마전 에릭슨 한국법인인 에릭슨코리아의 신임사장으로 부임한 야노스 휘게디(50.사진)씨는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살려 앞으로도 한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직접투자보다는 삼성전자에서 통신과 관련한 반도체를 구입하는 등 상품구매를 통해 한국경제에 이바지하겠다는 게 에릭슨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에릭슨은 지난해 삼성에서만 5,000만 달러의 통신용부품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이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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