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월 15일] 놀이의 힘

함박눈이 엄청나게 퍼붓던 날 일찍 퇴근하는 길에 동네 놀이터를 한번 둘러봤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패를 나눠 눈싸움을 하고 한쪽에서는 눈사람을 만들어 모자도 씌워주고 옷도 입혀주며 마냥 즐겁게 놀고 있으리라 기대하며 걷다 보니 왠지 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놀이터에는 하염없이 내리는 눈만 쌓여 있을 뿐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노는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차고 부산해야 할 놀이터가 적막한 공간이 돼버린 것이다. 왜일까. 조기교육,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에서 부모들은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고 우리 애 혼자만 처지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한다. 아이가 놀려고 하면 부모는 무엇이든지 가르치려고 하고 갓 돌이 지난 아기에게조차 '공부'라는 말을 입에 달게 된다. 놀이는 공부와 상반된 것으로, 놀이는 공부에 방해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지금 우리나라 부모들의 일반적인 관념이다. 그러나 놀이에 대한 교육학자들의 진단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놀이는 생의 거울"이라는 독일 교육학자 프리드리히 프뢰벨의 말처럼 놀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교육'이자 '학습의 장'이라는 것이 교육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주변 세계와 의사소통하고 사회화되며 미래 삶에 유용한 기술을 연습한다. 무엇보다 놀이는 누가 시켜서 이뤄지는 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활동이고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이자 공부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 제대로 놀았던 아이가 창의성도 높고 주변 세계와 잘 화합하며 참된 즐거움을 찾을 줄 알게 된다. 달리 말하면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되기 위한 조건들이 사실은 놀이로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놀이는 비단 아이들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른들에게도 놀이는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도구이다. 여러 회사들이 신입사원 채용시 '잘 노는 인재'를 중용하고 사원들에게 각종 놀이를 권장하고 지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잘 노는 사람은 주변 인물들과의 유대도 강하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이며, 따라서 업무 효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또한 놀이는 열정과 창조적 사고의 샘이다. 빌 게이츠가 학생 시절에 했던 컴퓨터 놀이는 퍼스널 컴퓨터의 획기적 전환을 이뤄 연간 320억달러를 넘는 세계 일류의 다국적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12살 때부터 아버지의 8㎜ 카메라를 가지고 이런저런 장면들을 찍으며 놀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결국 영화감독이 돼 33억9872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신화를 창조했다. 이들이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리고 창조적 사고로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즐거워하던 놀이가 자신의 일로 연결됐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놀이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추방하려 애쓰고 있다. 온 사회가 오로지 일과 공부에만 매달려 모두가 한곳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에 따라 누적된 피로는 우리의 창조적 사고가 흘러갈 혈관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다. 21세기는 개인의 창의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지식기반의 사회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적 해결책을 끊임없이 생성해내는 창의적 인재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우위에 서고 그 시작은 놀이에서 이뤄진다고 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놀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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