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DJ노믹스의 한국적 역사성과 전략성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金重雄 바야흐로 유럽에서는 1980년을 전후로 등장한 신보수주의 정권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21세기 새로운 정치·경제체제의 모색이라는 거대한 실험의 막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끄는 독일의 사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유럽연합 15개국 중 13개국이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의 중도좌파(연합) 정권을 갖게 된 것이 그 배경이다. 유럽은 미국식의 순수시장적 자본주의 모델도 아니고 과거 사회주의권의 국가주의적 모델도 아닌, 이른바 「제3의 길」(토니 블레어의 The Third Way)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지향은 과거 20여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동(反動)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미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는 고사하고 오히려 대량 실업과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유럽식 자본주의의 핵심 내용은 첫째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존중하고 둘째 실업률을 축소하는 등 사회적 형평성을 제고하며 셋째 국민적 동참과 협력(공동의사결정 제도 등)을 통해 21세기를 창출해 나간다는 것이다. 만약 이 길이 성공한다면 20세기의 동서 냉전체제를 대체하는 자본주의체제간 경쟁이 21세기에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민의 정부가 천명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경제철학이 언뜻 유럽의 길과 유사한 것같아 자못 흥미롭다. 그렇지만 DJ노믹스가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와 운용 전략은 결코 같지 않다고 생각된다. 영국과 독일을 필두로 하는 유럽의 제3의 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만개되고 또한 고도로 발달된 정치적 민주주의 체제 속에 이미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가진 선진국들에 의해 시도되는 실험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된 자본주의 시장원리도 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도 아직 실현해보지 못한 후진국이다. 더구나 오늘의 경제 위기가 정경유착, 관치금융, 부정부패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할 때 DJ노믹스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개념으로서 제시된 경제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DJ노믹스는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우리만의 역사성을 갖는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창출하여 당면한 경제 위기도 극복하고 앞으로 전개될 21세기 새로운 경제 질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는 데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다. 우리는 과거의 고도성장 정책으로 단기간에 눈부신 산업화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압축성장 과정에서 잉태된 여러 가지 부작용, 이를테면 관치금융과 같은 반(反)자유시장 원리, 경제 부문간의 불균형, 정치적 민주주의의 제약 등이 이제는 경제발전에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DJ노믹스는 지금의 우리 경제 문제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전략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성과 전략성을 갖는 DJ노믹스가 아직 논리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유시장경제와 형평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를 조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전략이 결여되어 있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결합은 역사적인 필연적 귀결이다. 그때문에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는 자본주의의 시작 이래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다. 앞으로 DJ노믹스는 이를 효과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효율성과 형평성이라는 두 가치가 상충되는 경우,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나 21세기 무한경쟁 시대 등을 감안할 때 효율성 가치가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절차의 민주성이나 투명성은 여전히 강조되어야 하지만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인간의 창조능력을 중시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는 공정한 자유시장경제 질서의 확립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향후 경제정책은 규제혁파 등을 통해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최대한 확대시켜 경쟁력을 높이도록 하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경쟁력 강화, 사회적 불평등의 축소, 국민적 동참과 협력의 중시 등 최근 유럽에서 일고 있는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한국적 상황과 가치관에 적합한 경제발전 모델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실천의 전략」을 하루빨리 마련하는 데 정책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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