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20세기 경제 발자취] 2. 금융 대변혁의 역사

21세기를 두달 앞두고 새로운 금융제왕을 차지하기 위한 금융대전 개막을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이 쏘아진 셈이다.◇분업주의에서 유니버셜 뱅킹으로=글래스-스티걸법은 지난 33년에 대공황(29년)을 교훈삼아 거대 금융권의 집중현상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고유영역에서만 영업할 수 있도록 규제됐지만 80년대 이후 민간부문의 치열한 경쟁구도에 부딪혀 사실상 존립기반을 상실하고 말았다. 미 최대 은행인 시티뱅크는 법안 페지이후 한달만에 보험부터 뮤추얼펀드까지 모든 금융업무를 원스톱으로 취급하는 「금융백화점」업무에 착수했다. 20세기는 한마디로 금융자본의 전성기였다. 이는 바로 금융기관들의 끊임없는 확장노력의 산물이자 치열한 헤게모니 싸움이었다. 금세기 중반까지 국제금융계의 맹주를 자처했던 런던은 70년대 금융빅뱅을 단행, 증권 수수료를 낮추고 금융기관 진입장벽을 허물어버렸다. 일본도 뒤늦게나마 90년대 이후 모두 3차례에 걸친 금융빅뱅을 단행, 은행의 증권업무를 전면 허용하는 등 전업금융시대를 성큼 앞당겼다. 국제금융계에 사업영역은 물론 지역·규모를 불문한 대빅뱅이 거세게 휘몰아친 시대였다. ◇금융기관 M&A시대=20세기 벽두는 당시 금융계의 대부였던 J.P. 모건이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는 1901년 2월25일 투자가들과 공동으로 앤드류 카네기사를 140억달러에 전격 인수, 철강회사인 U.S.스틸사를 탄생시켰다. 미국은 20세기들어 1900년대, 20년대, 60년대, 80년대 등 모두 4차례의 M&A붐을 겪었다. 이 와중에서 기업사냥꾼(레이더스)의 횡포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80년대 구조조정기를 거쳐 90년대는 금융기관의 몸집 불리기가 절정을 이루었던 연대기였다. 지난 98년 가을. 시티뱅크와 트래블러스그룹의 최고경영진은 기자회견을 갖고 양사 합병을 발표, 국제금융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당시로선 720억달러의 합병금액도 사상 최대였지만 이는 본격적인 금융산업 M&A열풍의 서막에 불과했다. 시티뱅크를 시발로 미국과 유럽, 일본을 거치면서 연일 사상 최대기록을 경신하는 M&A 발표가 터져나왔고 은행 순위가 하룻밤새 뒤바뀌는 숨가쁜 순간이 이어졌다.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는 98년 영국 모건 그렌펠과 미국 뱅커스 트러스트를 인수했으며 일본의 3대 은행이 자산규모 1조달러의 은행을 탄생시킨 게 지난 8월의 일이었다. 70년엔 세계 10대은행을 미국이 모두 차지했지만 90년에는 일본은행이 6개나 올랐다. 그리나 일본계 은행은 99년 현재 대거 하위권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금융상품의 발전=20세기에는 금융자본의 발전을 타고 새로운 금융상품과 투자기법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모건은 20세기 초부터 주변의 투자가들을 한데 모아 처음으로 신디케이트기법을 동원,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는 58년 9월 세계 최초로 신용카드를 선보였다. 마이클 밀켄은 71년 월가에 정크본드라는 신종 투자수단을 내놓아 「정크본드의 황제」라는 칭호를 부여받았지만 결국 시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지금은 전통적 예금기관인 은행을 위협하고 있는 뮤추얼펀드가 본격적으로 시판된 것은 50년대 초반. 24년 설립된 매사추세츠 인베스트먼트 트러스트(MIT)가 뮤추얼펀드의 원조격이지만 50년대 들어서서야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것이다. 이후 90년대 들어 투기성향이 짙은 헤지펀드가 전면에 부각됐으며 벤처 캐피털, 파생금융상품 등 수많은 신종상품이 고객들을 유혹했다. 그러나 20세기는 무엇보다 금융 세계화물결과 함께 사이버 금융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기록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과 글로벌 자본주의는 세계 금융계에 사이버 혁명바람을 몰고왔으며 이제 온라인 거래는 모든 금융기관의 미래를 좌우할 최대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정상범기자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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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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