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8월 26일] 악마의 변호인

천주교에는 시성조사심문관이라는 제도가 있다. 일반인에게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악마의 변호인은 어떤 인물을 성인으로 추대할 때 필수요건 가운데 하나인 기적의 발생 유무를 조사ㆍ확인하는 사람으로 '기적이 아닐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제에서 검증 및 반박을 한다.

요즘 청문회에서 날카롭게 질문을 퍼붓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이들의 역할이 악마의 변호인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청문회에서 거론되는 대부분의 사안은 긍정과 부정 양쪽의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이 때 질문자는 부정 쪽에 초점을 맞춰 검증을 하고 공직 후보자는 긍정의 근거를 제시해 의혹을 벗어나게 된다.


청문회의 기본 구도가 이렇게 돼있다 보니 후보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사안도 있을 것 같다. 터무니없는 일을 들고 나와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부인이 "밤새 펑펑 울었다"는 대목도 진위를 떠나 십분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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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문회의 존재 이유를 살펴보면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청문회는 공직자가 될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을 발굴해 칭찬하는 자리가 아니다. 최소한의 기본요건을 갖췄는지 알아보는 게 핵심이다. 김 후보자는 부인의 인사청탁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면 될 뿐 슬퍼할 필요는 없다. 할 일을 한 질문자에게 사과를 요구할 것도 아니다.

이번 청문회를 보면서 정작 슬퍼해야 될 사람은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기된 숱한 의혹에 대해 누구 하나 100% 아니라고 자신 있게 근거를 제시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천주교와 달리 청문회가 요구한 것은 기적의 근거가 아니다. 최소한 법적ㆍ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을 제시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를 내놓기가 공직 후보자들에게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점이 슬프다.

이번 청문회는 '죄송' 청문회라는 얘기가 있었다. 사과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을 경계하는 지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국회의원들은 앞으로 좀더 타이트하게 악마의 변호에 나서야 한다. 공직자 후보들은 정정당당하게 청문회를 통과하기 바란다. 통과가 어렵다면 깨끗하게 사퇴하라.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어쭙잖은 사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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