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일본인이 그린 한국인 이야기 '박치기'

재일동포 제작자, 소설 '소년M의 임진강' 영화화

때로 희망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피어난다. 모두가 자신만의 입장을 내세우기에 점점 산소가 희박해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런 영화도 있다. 볼 수록, 곱씹을 수록 그 맛이 깊어지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1968년 교토. 히가시고와 조선고 '불량배'들 사이에는 늘 전운이 감돈다. 여학생 희롱으로 촉발된 대립은 이내 마주쳤다하면 피 튀기는 패 싸움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 수록 왜 싸우는지는 모르는 채 그냥 서로의 존재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그러던 중 코우스케(시오야 슈운 분)는 선생님의 명령으로 조선고에 친선축구시합을 제안하러 간다. 거기서 플루트을 부는 경자의 모습에 첫눈에 반한 코우스케는 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금지곡인 북한 노래 '임진강'을 배우고 한국어를 공부한다. 코우스케의 순수한 모습에 경자도 마음을 열어가지만 일본 학생들과 조선 학생들간의 싸움은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불행하다. 일본 내 조선인들의 불투명한 정체성과 북한을 '고국'이라 여기면서도 선뜻 귀향선을 타지 못하는 고민 등이 가슴 답답하게 묘사된다. 코우스케의 사랑에 경자가 "나와 결혼하면 국적을 포기할 수 있어?"라고 묻는 것도 같은 맥락. 그러나 감독과 배우가 일본인이라는 점, 재일동포를 향한 그들의 시선이 따뜻하고 진심어리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보석 같은 희망이다. 더불어 이 영화가 2005년 일본 내 주요 영화상을 휩쓸었다는 사실은 배용준이 불러일으킨 한류 열풍과는다른 선상에서 반가움을 전해준다. '고(GO)'나 '피와 뼈'의 계보를 잇는, 재일동포의 삶을 조명한 일본 영화들의 꾸준한 등장 역시 또다른 한류인 것. 이는 장진영 주연의 '청연'이 주인공의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국내에서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했던 사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희망은 미래를 논할 때 싹튼다. "이 쪽바리 새끼"라는 대사가 일본인 배우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 역시 이 영화의 미래 지향성을 보여준다. 영화를 관통하며 흐르는 '임진강'(박세영 작사, 고종한 작곡)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출발점도 바로 '임진강'인데, 이 영화의 제작자인 재일동포 이봉우 씨네콰논 대표가 이 곡을 소재로 한 소설 '소년M의 임진강'을 보고 영화화를 결심했기 때문. 남북분단의 슬픔과 통일의 염원을 담은 이 노래는 일본에서는 1968년 '더 포크 크루세더스'가 번역해 발매했으나 금지곡이 됐다. 감독은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에서코우스케가 이 노래를 라디오 노래 자랑 프로그램에서 부르게 함으로써 감동을 배가시킨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물새들이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북녘의 대지에서남녘의 하늘까지 날아가는 물새들아 자유의 사자들아 누가 조국을 반으로 나누어 버렸느냐 누가 조국을 나누어 버렸느냐" 경자의 오빠 안성(다카오카 소우스케)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본을 떠나 북한에 가려고 한다. 일본에서는 축구를 해도 국가대표가 될 수 없으니 고국에 가서뛰겠다는 것. 그러나 두렵다. 고국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곳에는 '물새의 자유'가 있을까. 민감한 소재, 아픈 감성을 담아내면서도 일본 영화 특유의 깔끔한 만듦새와 단정함이 오롯이 살아있어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도 이 영화의 미덕. 68세대의 혁명과 평화의 정신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마지막에 새 생명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 것도 영화의 맛을 한층 살린다.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