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뇌파의 흐름 따라 빚어낸 山水

배영환 개인전, 화동 PKM갤러리

배영환의 작품명 '오토누미나(autonumina)'는 스스로 찾아내는 경건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뇌파 모양으로 흙반죽을 주물러 빚은 도자의 이미지는 성(聖)과 속(俗)을 넘나든다.

서울 종로구 화동의 PKM갤러리 앞에서 건너편 인왕산을 바라보면 왼쪽 얼굴을 드러낸 채 옆으로 앉은 ‘부처바위’가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이 바위는 ‘남근석’으로도 불린다. 얘기를 듣고 나면 또 그렇게도 보인다.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이미지, 이것은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배영환(41ㆍ한예종 교수)의 개인전 ‘오토누미나(Autonumina)’로 이어진다.

작가는 무의식의 산물인 ‘도자(陶瓷)’ 시리즈를 내놓으며 ‘스스로 찾아내는 경건함’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가 자신의 신작보다 먼저 보여준 것은 무명 화가가 그린 한국화 한 점. “이게 ‘금강전도’를 그린 거랍니다. 그런데 바위들이 ‘남근석’ 같지요. 하지만 실상은 갓 쓴 고승(高僧)들이랍니다. 여기, 얼굴이 보이죠?”


이번 작품은 병원에서 측정한 작가 자신의 뇌전도 그래프(EEG)에서 시작됐다. 능선 같고 물결 같은 파동을 보며 오물조물 백토를 빚었다.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의 반죽을 ‘딱 한번’만 주물러 뇌파의 형상을 좇았다. 이것은 의식적인 사고를 피한 채 감각의 흐름대로 그림을 그리는 오토마티즘(automatism) 기법과 통한다. 서양에서는 무의식의 근원을 찾아가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겼던 기법이지만 우리네 동양식으로는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손동작을 휘두르는 ‘일필휘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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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밀조밀 배열한 청자기들은 굽은 산과 날개를 편 새, 돌아앉은 어머니, 뛰노는 아이 혹은 드러누운 강아지, 뒤엉킨 남녀로도 보인다. 생각의 흐름이 언어로 규정되듯 의식의 흐름을 청자로 굳혀 작품을 만들었다. 참나무를 다듬어 평온한 상태의 뇌파를 3차원 산맥 모양으로 재현한 탁자도 놓여있다.

전시는 산수(山水)로 나뉜다. 청자 산맥은 흙을 주물러 만든데 반해 백자 물결은 손바닥으로 반죽을 뒤집어 빚었다. 이와 짝을 이루는 탁자는 조각칼과 끌로 표면을 밀어 파도를 형상화한 것으로 작가는 “한국의 예술가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고뇌와 히스테리의 중간 단계를 보여준 나의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의 배영환 씨는 노숙자에게 식당과 쉼터를 알려주는 ‘노숙자 수첩’,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도서관 프로젝트’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펼치는가 하면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는 등 전방위적 활동을 벌여왔다. 깨진 술병을 재활용한 그의 작품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전도연이 목을 멘 샹들리에로도 등장했다. 전시는 10월1일까지. (02)734-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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