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불법복제공화국/이균성·산업1부(기자의 눈)

올해말 대선의 향방, 「기아사태」 등 굵직한 기사의 틈새에서 23일자 주요신문 사회면에 작은 기사하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검찰이 소프트웨어를 불법복제한 10개 업체를 적발, 벌금을 부과했다는 내용이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제정되고 불법복제의 심각성이 지적되면서 검찰에서 간간히 흘러나왔던 이야기다. 그런데 이날 기사가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적발업체 가운데 소프트웨어 업체가 섞여 있다는 점이다. 『불법복제의 피해자다』며 목소리를 높여온 당사자가 다른 회사의 제품을 불법복제하다 벌금을 물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재수가 없어서』라고 변명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변명에 상당수 사람들이 동의한다. 수백만명의 불법복제 사용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는 「죄 아닌 죄」로 인식될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장본인 가운데 정부부처도 예외가 아니다. 불법복제의 피해자인 한글과컴퓨터의 한 관계자가 『이번에 10개 업체를 적발한 검찰의 컴퓨터에도 불법복제된 소프트웨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에 깔린 컴퓨터 프로그램 가운데 적어도 70%는 불법복제품이라고 공공연히 지적해 왔다. 18세 소년사장으로 잘 알려진 화이트미디어의 이상협씨가 지난달 김영삼 대통령을 대면한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한 말도 『먼저 정부의 불법복제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찰이 벌이고 있는 불법복제단속이 1회성 행사에 그치고 그 효과가 별로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부가 지키지 않는데 국민이 지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법복제공화국」에서 복제가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책을 살 때처럼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때도 반드시 돈을 지불해야 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제값을 치러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빌 게이츠」나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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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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