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선군정치'와 대북 쌀 지원

부산에서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나흘간의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사실상 결렬됐다. 북측은 지난 11일 오후 고려항공 전세기편을 이용해 김해공항에 도착, 일단 남북대화는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남북은 그러나 회담 셋째날인 13일 오후 누리마루APEC하우스에서 종결회의를 갖고 공동보도문을 내놓지 못한 채 성과 없이 회담을 끝냈다. 당초 회담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됐지만 남북간 입장차는 생각보다 컸다. 이번 회담이 하루 앞당겨 막을 내린 데는 북측의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간사는 북한의 이른바 ‘선군(先軍)정치’가 남한을 지켜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권 단장은 회담 둘째날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남측의 우려를 인식한 듯 “선군정치가 남측에 안전을 도모해주고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선군정치란 글자 그대로 군대가 모든 것에 앞선다는 뜻. 이 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5년 1월1일 한 포병중대를 순시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군’은 김 위원장의 통치 이념으로 미국과의 대결 속에서 체제를 지켜주고 나아가 한반도 내에서 전쟁 억지력 효과를 갖는다고 북한은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북측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북측이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키고도 남측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북한 지도부가 남한 내부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미사일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북측의 수준 낮은 ‘꼼수’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측 회담 대표인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북측의 선군 발언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본다. 결국 이번 회담은 북측의 선군 발언으로 알맹이 없는 정치적 선전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한은 선군정치를 운운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적 차원의 쌀 지원을 요구했다. 배고픈 북한 주민과 우리 국민들을 볼모로 한 북측의 미사일 도발에 남측이 앞으로 어떤 해법을 마련해야 할지 주목된다. 북한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기대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