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붉은악마효과와 경기예측

직업적 관성으로 이번 월드컵 성과를 규정해 만들어본 말이다. 자연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현상 분석에도 종종 인용되는 카오스(혼돈) 이론의 이른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원조다. "베이징의 나비 한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면 얼마 뒤 카리브해에서 허리케인이 인다."-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기상예측의 방법으로 창안한 이 이론은 초기 조건의 미세변화가 예측 밖의 엄청난 변이를 몰고 온다는 게 요지다. 전통 강호들의 대거 추락. 승부가 이론대로만 간다면 16강도 이변이었을 FIFA 랭킹 40위의 한국이 일약 축구 4강으로 치달았다. 수많은 변수, 그중에서도 몇몇 젊은이들의 객기 정도로 치부했던 붉은악마의 '나비 짓'이 마침내 허리케인을 만들며 대폭발의 주동력원(動力源)이 됐다. 스포츠 승부란 것도 얼마나 많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뒤바뀔 수 있는지 이번 월드컵은 한편의 드라마로 보여줬다. 그 변수들의 분석을 위해 운동경기에도 양자역학이 동원될 일이 눈앞에 온 거다. 예측이론 계량화의 시조는 뭐니 뭐니 해도 경제학자들이다. 경제학에서 미래예측이란 학문 자체의 의미기도 하다. 초보적 경기 순환론에서 학자들은 최근 자연과학의 이른바 '비선형적 복잡계'(non-linear complex system)의 해석론까지 차용,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측이론을 세워가고 있다. 월가 금융기관들이 물리학자를 대거 채용하고 있는 것은 각종 기법(tool)을 동원한 이들의 정량적 분석능력 탓이다. 경기의 흐름은 그러나 물리학의 뉴턴역학같이 패턴화된 이른바 '기계론적 궤적'을 그리지 않는데서부터 골치가 아파진다. 비결정론의 시조(始祖)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경기예측이란 태생적으로 확률로서만 가능한 듯싶다. 결정된 미래란 없으며 확률적으로만 정의 가능하다는 얘기다. 확률에 의지할망정 그러나 예측은 분명 발전의 필요요소임에 틀림없다. 내로라 하는 세계경제 기관들의 최근 경기예측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확률적으로조차 신뢰를 잃고 있다. 낙관과 비관론이 방향성 없이 극단적으로 교차하는가 하면 지표는 지표대로, 시장은 시장대로 엇박자로 움직인다. 사전(事前) 예측보다는 사후 진단만이 난무하는데다 잇단 회계부정에 반독점 소송까지 맞물려 시장은 어지럽다. 우리 같은 신흥경제권 국가들의 경우 경기예측은 더욱 간단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경기 순환적 요인보다 대외 충격요인에 의해 발생되는 오차가 큰 까닭이다. 야당 압승의 선거와 남북한 교전 등이 최근 사례다. 요즘 컨디션이 양호하다고 자신하는 한국경제. 그러나 주가는 연중 최저치, 월가에서 이머징마켓으로 향한다는 국제자금의 유입은 입소문만 무성하다. 주가가 바닥인지, 경기는 본격적인 대세상승 국면인지 이런 저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국내 애널리스트들의 예측은 프로의 예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공적 월드컵 이후 쏟아지는 세계의 칭찬에 혹시 도취돼 있지는 않나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IMF사태 전에도 우리 경제에 대한 외국의 칭찬은 침이 말랐다. 그러나 썰물처럼 빠져나간 외국자금들과 함께 그 달콤함이 쓴 조소로 바뀐 건 한순간이었다. 주식ㆍ외환 등 국제 금융시장이 나타내는 최근의 '나비 짓'이 언제 '허리케인'으로 바뀔 지 월드컵 승리의 애드벌룬을 띄우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주가 폭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로 소비가 줄며 투자감소가 나타나는 미국. 도미노성 위기에 처한 남미. 요동치는 국제 경제환경에 눈길을 주고 차분한 현상진단과 냉철한 경기예측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야만 하는 곳을 알았을 때 이미 그곳에 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가고 있던 길을 계속 가게 되면 미래에 대한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붉은악마 효과 극대화'라는 국민적 과제를 앞두고 되새겨보는 경영학자 찰스 핸디의 말이다. 홍현종<국제부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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