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도시와 농촌은 하나다

김성훈 <상지대 총장·전 농림부장관>

이제 궂은 장마가 걷히고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시작됐다. 주5일 근무제와 겹쳐 도시 사람들의 농촌휴가 행렬이 여느 때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 유럽의 전형적인 농산어촌지역, 특별히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과 스위스ㆍ독일ㆍ오스트리아 등의 알프스 지역 마을들의 ‘농촌다움(amenities)’ 관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농촌여행은 마치 폴 세잔의 전원풍경을 감상하는 것 같다. 화창한 코발트색 푸른 하늘 아래 노랗고 빨갛고 연분홍색의 꽃들이 녹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들판을 다퉈 수놓고 있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중세형 농가 지붕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농촌마을, 그리고 한가롭고 넉넉한 프랑스 농촌의 풍경을 돌아보면서 도시민들은 절로 마음이 상쾌해지고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함에 잠긴다. 그래서 여행객들은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우리 도시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서라도 이들 농산어촌의 어메니티를 살려나가도록 농민들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저 없이 주장한다. 스위스의 알프스 골짜기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만년설이 뒤덮은 정상 아래 초록빛 초지가 이어지고 홀스타인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언덕 위에는 포도밭이 앙증스럽게 자리 잡고 집집마다 여행객들을 기쁘게 맞이하는 빨갛고 노랗고 보랏빛 꽃들이 주렁주렁 베란다를 장식하고 있음에 감격한다. 어지간한 농가 지하창고에는 포도주 익는 향기가 은은하고 민박을 마련해 도시 공해에 찌든 손님들의 심신을 달래준다. 그래서 나그네들은 “우리가 세금을 더 내서라도 오지의 농가에 정부 차원에서 보다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끄덕인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농가소득보상의 직접지불제도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오스트리아 융프라우 산록 아래 외진 골짜기에서 열심히 가을걷이 목초밭을 가꾸고 있는 농부가 다름 아닌 오스트리아 후작임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진다. 손수 손님을 접대하는 부인도 귀족이며 아들은 농업명인(meister)을 지망하는 고1 학생이다. 2층 목제주택 아래층은 젖소들의 착유실, 그 옆으로 주인 내외의 방이 맞대어 붙어 있고 2층 반쪽은 목초 저장시설, 그리고 연달아 14개의 침대가 들어 있는 방 6개, 주방과 식당이 한곳에 모여 있다. 알프스 일대에서는 어느 나라건 침대가 15개 미만일 경우 민박에 세금이 붙지 않는다. 정부지원(직접소득보상)도 평야지 도시 근교보다 훨씬 많아 심산궁곡임에도 ‘유기축산+유기농사+자가가공판매+민박+정부직불보조금’으로 유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자녀들의 교육ㆍ문화ㆍ의료ㆍ복지 지원도 벽지라 해서 부족함이 없다. 독일은 아예 전국 농촌지역의 생태공간에 대해 과학적으로 기초자료를 만들어 친환경 생태농업과 어메니티 자산화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역별로 어메니티 자산을 브랜드화해 소중한 농촌살리기 밑천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차원에서 농촌쾌적성(amenity)대회를 개최하며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먼저 소비하자는 지산지소(地産地消)운동과 1촌1품운동을 오래 전부터 꾸준히 펼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지역사회 유기농 도농연대운동을 지원해 생태 환경도 보전하고 도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장함으로써 농가들의 소득을 높여주고 있다. 전국 인구 가운데 농민 수가 모두 3% 안팎의 낮은 비중인데도 지원액은 천문학적이다. 그리하여 ‘농촌다움’을 도시민의 웰빙 욕구에 접목시키는 데서 현재와 미래의 농어민의 살길을 찾고 있다. 농민을 살려야 농촌이 살고 도시가 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란 도시와 농촌 어디에서 살든 소득ㆍ교육ㆍ문화ㆍ복지 등 삶의 질에 별로 차이가 없는 나라를 말한다는 철학이 각계각층에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이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건 자유무역협정(FTA)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도시민들이 앞장서 농업ㆍ농촌ㆍ농민을 가꾸고 지켜주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도시 부문에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웰빙 욕구가 격렬히 제기되면서 그 해답을 농산어촌의 순수한 모습, 즉 어메니티에서 찾기 시작했다. 인간다운 정(情)의 문화, 아름다운 생태 환경, 오염에 찌들지 않은 경관,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친환경적인 농산식품 수요 등 농산어촌의 어메니티 현장을 찾아가는 웰빙의 행렬들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프로방스, 유럽의 알프스산촌, 미국ㆍ캐나다의 유기농촌, 일본의 농어촌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정부만 다를 뿐이다. 도시와 농촌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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