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림칼럼] 전문직의 자율규제

21세기는 전문가의 시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느 직업 분야에서든 전문성을 가져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는 비단 의사ㆍ법률가ㆍ과학자 등 대표적인 전문직으로 손꼽히는 직업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전문’이라는 단어나 ‘전문가’라는 표현은 흔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일상화됐다. 전문가가 엄격한 규범과 기준에 의해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공인받는 것을 뛰어넘어 각 분야에서의 성취 정도와 판단에 의해 보다 폭넓게 결정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전문직은 어떤 특성을 갖는가. 우선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엄격한 훈련과 숙련과정을 통해 업무에 있어 능숙해져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직업적 이익보다는 국민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위해 일해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그 이상의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한다. 엄격한 윤리강령을 갖고 실천해야 하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가치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전문직은 그 자체로 존경의 대상이 되며 공공의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전문직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평가에는 긍정과 부정 양면이 모두 포함돼 있는데 특히 최근 들어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즉, 전문직이 권력과 명예를 좇아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거나 사회적 책무와 윤리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자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전문직은 고유한 전문성과 사회적인 책무를 다해야 하며 이는 외부 통제와 타율에 의한 규제와 질책에 의해서는 개선되기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전문직 단체들이 법과 제도에 의한 정부의 규제만으로는 미진한 부분을 스스로 채찍질하기 위해 전문직 자율규제기구들을 만들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들 자율규제기구에서는 대학졸업 전 교육이나 졸업 후 교육, 직무수행 등 모든 면에서 적용 가능한 규제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공통적으로는 대학교육에서부터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즉, 전문직 교육의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관리함으로써 전문직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의학ㆍ약학ㆍ치의학ㆍ수의학 및 간호학ㆍ공학ㆍ신학ㆍ교육학 등 학문 분야에서 자체평가기관이 시행하는 대학인정평가제도가 정착돼 있다. 지난 2000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의학ㆍ치의학ㆍ한의학ㆍ간호학ㆍ공학ㆍ건축학ㆍ경영학ㆍ법학 분야의 자체평가기구가 설립되면서 자율규제기구로서의 역할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교육의 인정평가뿐만 아니라 병원 신임평가제도, 대한변호사협회의 투명사회협약 성명 발표 등도 실추된 신뢰를 되찾고 사회로부터 다시 인정받고자 하는 전문직의 자율규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외부에 의한 통제와 수동적인 피평가자 입장에 익숙해져 있고 최소한의 제도적 법적 테두리에 안주하며 지내온 우리 정서에 비춰볼 때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변화이다. 전문직의 어긋난 가치를 국가가 바로잡아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사회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후에, 국제경쟁력을 잃어버린 후에 개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직으로서 갖춰야 할 수준과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타율적인 간섭과 질책이 있기 전에 전문직 스스로가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막 시작된 전문직 자율규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그 남용과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한층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인정(認定)이라는 말에는 ‘믿고 맡긴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직 자율규제가 제 몫을 다해 국가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위상을 되찾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우수한 전문직 인적자원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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