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미국의 이중성/뉴욕 김인영 특파원(기자의 눈)

동남아 통화위기에 미국의 외환투기꾼이 개입했다는 피해국의 주장에 미국 정부는 처음엔 침묵을 지켰다. 공식적인 답변은 온건했고 그나마 비공식적으로 몇마디 했을 뿐이다.그러나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를 비롯 말레이시아 관리들이 미국 헤지펀드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가자 미국 정부는 더이상 가만 있지 않았다.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 안보포럼에서도 조지 소로스를 둘러싸고 미국과 말레이시아의 공방전이 극에 달했다. 말레이시아의 압둘라 아마드 외무장관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을 코앞에 두고 헤지펀드의 수법을 「야비한 음모」, 「국제적 범죄」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주최국이 이렇게 나오자 올브라이트 참모들은 『통화위기는 시장과 국가 경제의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며 투자자들은 이를 이용할 뿐이지 그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소로스를 두둔했다. 미행정부 관리들은 말레이시아가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자선사업가를 증거도 없이 투기꾼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았다. 기실 소로스는 미국인들에게 인기인임에 틀림없다. 소로스재단이 벨로루시, 미얀마 등에서 탄압을 받으면 미국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하고 미국 정부가 개입하곤 했다. 그는 재산의 절반과 시간의 3분의2를 저개발국, 특히 공산주의를 포기한 나라의 자선사업에 쏟는 정력가다. 18세기 제국주의는 선교사를 앞세웠다. 그 제국주의가 20세기초에 무너졌고 반대세력이었던 공산주의도 붕괴됐다. 그런데 20세기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자선사업가를 앞세워 개발도상국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주장은 반드시 제국주의의 지배 경험이 있는 나라의 피해의식에서 나온 것일까. 동남아인의 눈에 소로스가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시장을 교란시키는 외환투기꾼에 불과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 원화도 헤지펀드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게 국제금융시장의 정설이다. 막강한 미국 금융자본과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 정부의 이중성을 똑바로 인식하면서 현재의 경제위기와 앞으로의 금융시장 개방에 대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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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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