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유부남과 불륜" 점괘에도 깔깔 웃는 그녀들

사주카페 문전성시… 전통 점집보다 복채 저렴한 3천~1만원선<br>손님 90%가 20~30대에 女 70%… 종전 애정운서 이젠 취업 문의 1위



2011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점술가들이 바로 그들. 신년 운세를 보기 위해 점술가를 찾는 이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집'은 다소 부담스러운 경향이 없지 않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고안된 것이 '사주카페.' 편안한 분위기에서 차도 마시고 저렴한 가격에 점도 볼 수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12일 오후, 신촌의 '용하다'는 사주카페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향이 풍겨왔다. 낮게 깔린 조명 아래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수다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여기까진 일반 카페와 별 차이가 없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카페에 '점술가'들이 있다는 정도. 점술가들은 카페에 상주하면서 손님들의 요청에 따라 점을 봐주고 있었다. 관상이나 사주, 손금 등 동양식부터 타로카드를 이용한 서양식 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복채는 과거 3만원선으로 다소 비싼 편이었지만, 최근 사주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3,000원에서 1만원선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부르는 게 값인 무당들의 복채에 비해 무척이나 '착한' 가격이다. 내부를 구석구석 살피던 중 한 남성이 점을 보기 위해 점술가를 부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근처에 다가가 귀를 기울여봤다. 이 남성의 나이는 29살.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취업을 못했다는 게 고민의 핵심이었다. 이에 점술가는 "상황은 암울한데 그에 비해 노력은 안하는 것 같다" "다음 해 중순까지 일자리 못 잡으면 취업은 물 건너 간다" "개인사업운은 없으니 취업 활동에 좀 더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등의 점괘를 내놨다. 이를 경청하던 남성의 낯빛에는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점을 마친 점술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을 건네 봤다. 점술사 경력 4년차라는 연명훈(31·가명)씨에 따르면 이곳을 찾는 이들의 90%정도가 20~30대다. 또 그 중 70% 이상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들의 최대관심사는 단연 취업. 과거 1위를 고수하던 애정운은 2위로 밀려났다. 이어 금전운, 건강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최근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취업에 대한 질문을 부쩍 많이 받아요. 취업에 대한 고민을 안고 방문하시는 분들도 늘었고요. 덕분에 매출이 늘어 좋긴 한데, 안타깝기도 하네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관심 운세 판도에 변화가 생긴 것. 2위로 밀려난 애정운도 여전히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지만 과거에 비해 질문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예전엔 예를 들어, '남자친구가 스킨십이 너무 심한데 나를 정말 사랑하기는 하는 건가' '어떻게 하면 애인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겠는가'라는 등의 질문이 많았어요. 하지만 최근엔 '남편 될 사람의 스펙'이 주된 관심사에요. 미래 배우자의 재산, 직업이나 연봉 등을 물어오는 거죠. 요새 워낙 어려우니까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네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 명의 여성이 그를 지명해 왔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 솔로라는 이정은(27·가명)씨의 질문은 '미래에 어떤 남성과 결혼하게 될 것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점술가가 장황하게 풀어놓긴 했지만 결국 "결혼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랑하게 된다"는 결론이었다. 즉,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게 되리란 것이다. 정은씨와 친구 정미란(27·가명)씨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썩 좋은 점괘가 아님에도 이처럼 유쾌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정은씨가 답해줬다. "안 믿으니까요. 가격도 싸고 재미로 보는 거죠 뭐. 물론 이따금씩 상황이 들어맞으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뿐이에요." 그럼에도 이들이 점을 보는 이유는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 받기 위해서란다.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점술가는 일종의 카운슬러인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점을 보는 내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일찍 결혼하면 이혼한다" "부모의 금전적 도움은 없다"는 등의 말에도 이들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행여 점술가에게는 불편하진 않을까. "믿고 안 믿고는 기본적으로 본인한테 달려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 해도 할 수 없어요. 그저 이곳에서 마음의 짐을 덜고 위로를 받고 가셨다면 된 거에요. 하지만 처음부터 아예 선을 긋고 증명해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엔 좀 서운하기도 해요. 하지만 오히려 너무 맹신하는 게 문제에요. 1년 전쯤엔 점을 믿었다가 낭패를 봤다며 카페로 찾아와 난동을 부린 손님도 있었어요. 점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일 뿐이지 절대적으로 매달리면 안돼요." 점술가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또 누군가의 부름을 받았다. 10분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결국 필자는 점술가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카페를 나서는 동안에도 저마다의 고민을 안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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