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우울한 아시아 정신질환으로 신음

아시아가 정신질환으로 신음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최근호(11월10일자)에서 아시아인들이 “정신질환은 유럽과 북미 등 부자 대륙만의 `배부른 질병`”이라고 생각하고 치료와 예방에 허술하게 대처하고 있는 사이에 정신질환이 암보다 무서운 기세로 아시아를 갉아먹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각박한 경쟁 풍토 ▲독재와 내전으로 일상화한 폭력과 빈곤 ▲최근 경제침체로 인한 박탈감 등 다양한 이유로 정신질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일부는 `귀신들린 마귀`나 `사회의 쓰레기`로 취급돼 버려지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까지 정신질환이 아시아의 최대 보건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 신음하는 대륙 아시아 각국의 경제발전 정도와 역사, 문화에 따라 주로 나타나는 질병의 종류와 양태도 천차만별이다. 중국에서 정신질환이 급증하는 이유로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사회격변이 꼽혔다. 현재 중국인의 불안장애는 문화혁명 때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하이 푸단대학의 지지안린 교수는 “신체적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중 최소 30%는 정신 이상 때문에 육체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심신상관 질병`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18~34세 젊은이들의 사망원인 중 1위가 자살로 집계됐다. 성공에 대한 야망을 품고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로 몰려드는 젊은 노동자들의 정신질환 발병률은 중국 전체 평균의 2배를 넘는다. 일본은 `자살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8년 이후 매년 3만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신질환 입원환자 수도 세계 1위이다. 치열한 경쟁, 학력 지상주의, 전체주의 등 일본 특유의 숨막히는 사회 분위기가 그 이유로 지목됐다. 몇년간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중년 남성들의 자살이다. 평생고용 문화에 젖어있던 사람들이 구조조정과 대량해고 사태를 견디지 못하고 손쉬운 도피수단으로 자살을 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위 공무원들의 사인 중 1위가 자살이다. 타임은 “사무라이의 할복과 카미카제(神風) 문화가 이러한 현상에 일조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최근 경제난으로 인한 정신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자살자 수가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자살자 1,10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실업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 대만에서는 최근 초등학교 4학년생의 4분의 1이 어두운 미래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설문결과가 발표됐으며, 17년만에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한 싱가포르에서도 최근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이 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1975년부터 3년간 크메르루즈의 폭정을 겪은 국민의 75%가 고문으로 인한 외상후신경증 등 중증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크메르루즈 세대에서 태어난 세대에게도 그 상처가 대물림돼 어린이의 40%가 다양한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고 있다. 파키스탄,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는 내전과 정정불안, 빈곤으로 인한 정신질환자들이 많다. 20여년째 내전을 치르고 있는 스리랑카의 자살률은 전세계 평균의 4배에 이른다. 남성중심적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횡행하는 인도에서는 여성의 정신질환 발병률과 자살율이 현격히 높다. ▒ 방치되는 아시아의 정신병 타임은 “서양에서는 정신병원을 슈퍼마켓 가듯 해 정신병에 대한 과잉 진료가 문제가 되는 반면, 아시아에서는 정신질환도 엄연한 질병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정신 이상은 내면수양으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단정한 동양사상 ▲정신질환을 귀신들림이나 전염병으로 오해하는 무속 신앙 ▲열악한 보건제도 등이 꼽혔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1995년에야 의과대학에 정신과 전공이 도입됐으며, 여전히 정신분열증 환자의 90% 이상이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정신과 전문의는 고작 2,000여명이다. 정신질환 치료와 예방에 가장 많은 예산을 쓰는 일본에서도 의사 1인당 환자수가 내과의 경우 16명이고 정신과는 48명이다. 빈국들의 실태는 훨씬 끔찍하다. 정신과 전문의가 모두 20여명밖에 안되는 캄보디아의 정신질환 관련 예산은 미국 정신병원 1곳의 예산보다도 적다. 인도네시아 정부 시설에 수용된 정신질환자에 배당된 예산은 하루에 1인당 1달러가 되지 않는다. 파키스탄에서는 정신질환자를 범죄자와 함께 감옥에 집어 넣고 방치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의 정신질환은 에이즈나 암보다 훨씬 파괴적인 부작용을 끼칠 수 있다”라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관련기사



최문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